"이틀간의 억만장자"

미 퍼스트 시카고 은행의 고객 8백명은 순간의 일이었지만 "벼락부자"의
행복감을 맛볼수 있었다.

이 은행의 컴퓨터 시스템이 착오를 일으키는 바람에 이들의 계좌
잔액이 순식간에 10억달러 가까이로 불어난 것.

은행측은 한 고객이 "자진신고" 해오기 전까지 이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16일 자신의 계좌에 9억2천4백만달러가 들어온것을 알게된
미 제니스전자 컴퓨터 기술자 제프 페레라대가 은행으로 전화를 걸어
"뭔가 잘못됐다"고 신고했다.

즉각 조사에 들어간 퍼스트 시카고는 고객 8백명의 총 계좌액이
실제액수보다 7천6백39억달러나 불어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은행의 지주회사인 퍼스트 시카고 NBD 총 자산의 6배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이다.

은행측은 즉시 모든 거래를 동결시키고 컴퓨터시스템에 대한 수리에
들어갔다.

사고발생 이틀만인 18일 오전 1시 컴퓨터 시스템은 정상화됐다.

조사결과 이번 사고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바꾸는 과정에서 생긴 착오로
밝혀졌다.

신고 즉시 거래를 동결한 덕분에 실제 피해액은 없었다.

그러나 퍼스트 시카고 은행은 이번 사건으로 미 금융업계 사상 최대
계좌이체 사고를 저지른 은행이란 오명을 얻게 됐다.

사실 페레라가 유혹을 느끼지 않은 것도 아니다.

동료들은 "케이맨 군도로 돈을 이체하고 명의를 바꾼뒤 돈을 인출해
가라"고 충동질 하기까지 했다.

"며칠동안만 이 돈을 투자해서 이자를 챙긴뒤 그대로 은행계좌에
되돌려 놓으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었다"는게 페레라의 고백이다.

< 노혜령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