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계가 연립여당의 중심세력인 자민당에 대한 지원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93년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면서 정치헌금을 중단하는 등
멀어졌던 관계가 빠른 속도로 다시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최근 발족된 하시모토
총리를 둘러싼 모임 이다.

이모임에는 도요타 쇼이치로 경단련 회장 네모토 지로 일경련 회장
이나바 고사쿠 일본 상공회의소 회장 우시오 지로경제동우회대표간사 등
경제4단체장을 비롯 선발된 재계거물 19인이 참여하고 있다.

이모임은 형식적으로는 하시모토 수상과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시모토 총리 및
자민당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모임을 통해 재계와 자민당간의 밀월시대가 다시 찾아오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있다.

이같은 움직임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자민당이 다시 집권세력의
중심축으로 등장한 사실이지만 연립여당과 경단련이 모두 새체제로
바뀐데도 큰 원인이 있다.

연립여당에서는 지난해 무라야마 도이치사회당위원장 대신 하시모토
자민당 총재가 총리직을 차지했고 경단련회장에서도 도요타 쇼이치로
회장이 정치헌금중단을 선언했던 히라이와 가이시 회장으로부터
재계 총리의 자리를 넘겨받았다.

새로운 정계총리와 재계총리간의 만남은 지난해 10월31일 처음으로
이뤄졌다.

자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한 후 소원해졌던 관계에 대한 화해의식이
이뤄진 셈이다.

이어 11월부터는 경단련과 자민당 집행부간의 회합도 부활됐다.

경단련은 그후 얼마있지 않아 93년 중의원선거때 자민당이 선거자금으로
은행에서 빌렸던 1백억엔을 대신 변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민당이 갚지 못한 대규모 부채를 경단련이 회원사들로부터 갹출해
매년 20억엔씩 5년에 걸쳐 상환해 주겠다는 내용이다.

자민당과의 관계회복을 대내외에 공식 선언한 셈이다.

경단련은 또 6월에는 샐러리맨이 정당 및 정치가와 의견을 교환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있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기업인 정치포럼 이란 기구도
설립할 계획이다.

이기구는 우선 회원기업 및 단체의 관리직을 대상으로 1천명 정도의
회원을 모집하며 정치가를 강사로 초청해 각종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샐러리맨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임으로써 개인 헌금을 촉진시키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정치인의 정책과 활동을 분석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부수적인 지원도
해줄 계획이며 사무국은 경단련이 담당한다.

자민당과 재계의 관계가 이처럼 급속히 회복돼 가고는 있으나
정치헌금을 공식 재개하는 문제를 둘러싸고는 아직도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자민당이 정치헌금 모금기능의 재개를 요구하는 반면 경단련은
공식적으로 다시 정치자금을 모으기는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민당의 정치자금 모금기구인 국민정치협회 (재단법인)
산하에 지난해 10월 설치된 정책위원회라는 조직이 알력의 초점이 되고
있다.

경단련은 종전 국민정치협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기부하고 자민당에
업계의 요망을 전달해왔다.

그런데 헌금을 중단한후 자민당이 개별기업들이 직접 헌금을 내는만큼
정책건의도 이위원회를 통해 업계로부터 직접 듣겠다고 나선 것이다.

더구나 자민당은 경단련에서 헌금알선업무를 총괄했던 후사노 나츠아키
전경단련 전무를 정책위원회를 이끄는 책임자로 끌어들였다.

경단련이 정치헌금 알선업무를 재개치 않을 경우 업계의 민원을
수렴하면서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취지다.

대정부업무의 업계창구역할을 자임해온 경단련은 위상약화를 우려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민당에 정책위원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이문제를 놓고는 줄다리기가 상당기간 더계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자민당과 재계가 제2의 밀월시대를 향해 전진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도쿄 = 이봉구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