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의 통신협상 시한이 내년2월15일까지로 연장되는등
세계 통신시장개방협상이 사실상 결렬됨으로써 다자간협상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특히 미국측이 강경노선을 쉽게 수정할 조짐이 없는 가운데 일본 캐나다
등도 기존의 입장을 크게 바꿀 것 같지 않음에 따라 내년 2월15일까지
여유있는 기간을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타결을 기대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게 WTO 주변의 관측이다.

일부에서는 지난번 금융서비스 협상처럼 미국이 협상테이블을 박차가
나가고 나머지 나라들만 통신시장개방 다자간협상에 도달하는 "반쪽 협정"이
나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럴 경우 WTO의 존재가치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며 미국이
각개격파식의 쌍무 통신협상압력을 가중시켜 세계적으로 통상외교가 더
험악해질 수 있다.

협상시한 연장결정직후 샬린 바셰프스키 미무역대표부(USTR)대표는 "다른
국가들이 내놓은 안은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선에 크게 미달한 것"이었다고
평가하면서 "미국안에 상응하는 보상이 없는 합의는 불가능하다"고 주장
했다.

미국측이 요구해온 <>외국인통신회사의 투자지분제한철폐와 <>위성통신시장
의 개방및 <>현지정부의 통신기술표준지정 철회등이 관철되지 않는한 합의
도장을 찍지 않겠다는 자세다.

미국측의 요구는 통신산업의 유치기에 있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같은
동남아시아국가들로서는 아주 벅찬 과제다.

심지어 유럽에서도 미국측의 "대개방론"은 개방에 적극적인 영국과 개방
일정을 되도록 늦추고 싶어하는 독일과 프랑스등간에 마찰을 빚을 수 있는
문제다.

여기에 미국은 최근 몇일 사이에 외국통신회사의 미국시장 진출자격을
진출희망 회사가 속한 나라의 시장개방정도와 연계시키겠다는등 WTO같은
다자간협상에서는 받아 들여질 수 없는 쌍무적인 조건까지 들먹여 협상전망
을 더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반면 오는11월을 고비로 미국의 강경론이 약간 누그러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견해도 무시할 수 없다.

이같은 낙관론은 미국이 최근들어 통신시장개방에 강수를 뜨는 것은
클린턴 행정부가 11월의 대통령선거를 의식하고 있다는 관측에서 비롯된다.

미국도 WTO통신시장 개방협상이 결렬되면 자국 통신회사들의 해외진출전략
에 차질을 초래하기 때문에 무조건 강공일변도로 나올 수 만은 없는 입장
이다.

통상전문가들은 따라서 미국의 대통령선거일인 11월5일이후부터 내년
2월까지의 약 4개월정도사이에 벌어질 협상과정에서 각국이 마지막 히든
카드를 제시하면서 극적인 타협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레나토 루지에로 WTO사무총장은 "98년부터로 예정된 통신시장개방협정
발효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이번의 협상마감시한 연장으로 세계 통신
시장개방일정이 바뀐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낙관론에 서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1차 데드라인을 넘기고 9개월반동안의 새 협상에 들어간 현시점에서
기존의 자국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53개 협상당사국중 특히 미국이 어떤
수정안으로 제시할지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