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를 움직이는 세계의 큰손] (4) 퀀텀 펀드..공격적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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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3년 2월.
D증권사에서 국제영업을 담당하는 K이사는 외국인 고객의 주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증권주 한종목에 대한 주문을 1,000만달러어치나 냈기 때문이다.
일단 주문을 처리하고 난 K이사는 이 외국계 펀드가 다른 증권사 창구를
통해 동시에 5개 증권주를 각각 10만주단위로 주문을 낸 것을 알고 또한번
놀라야 했다.
K이사가 세번째로 놀란 것은 이러한 투기적 매수가 2개월뒤 17%정도의
높은 수익률을 올려줬음을 확인하고서다.
K이사를 놀라게 만들었던 이 외국계 펀드는 미국의 대표적인 헤지펀드로
알려진 퀀텀펀드였다.
"국제금융계의 살아있는 전설" "금융의 연금술사"등으로 유명한
조지 소로스(66)가 창설한 바로 그 펀드.
소로스는 "소로스펀드 매니지먼트"라는 미국 투자회사의 총수로서 휘하에
6개의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이 퀀텀펀드다.
퀀텀펀드는 일반인의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뮤추얼펀드나 연금을 운용하는
펜션펀드와 달리 소수 갑부들의 큰돈을 모아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펀드자금은 주로 미국내 유태인들의 돈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 소로스 역시 유태인이다.
퀀텀펀드는 지난 69년 조지 소로스가 400만달러규모로 시작한 더블이글
펀드가 그 기원.
그러나 불과 4년후인 73년 소로스펀드로 이름을 바꿨을 때 규모는 4배나
늘어났다.
외환이든 증시든 상품선물이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통화 채권 주가지수
주식등 돈벌이가 되는 상품이면 어떤 것이든 공격적인 투자로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퀀텀펀드의 수익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 69년 설립후 26년간 퀀텀펀드의 연간 평균수익률은 35%에 달한다.
지난 92년과 93년에는 60%가 넘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려 이 분야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해마다 10억달러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퀀텀펀드의 화려함은 조지 소로스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소로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지난 81년 퀀텀펀드로 이름을 바꾸면서 소로스는 다른 펀드매니저에게
운영을 맡기고 자신은 다른 펀드를 운용했다.
이때 퀀텀펀드는 22.9%의 자산감소를 보이고 말았다.
3년뒤 소로스가 복귀할 때까지 퀀텀펀드는 그 이전의 화려한 명성을 잠시
접어둬야 했다.
소로스 복귀후 퀀텀펀드는 87년 외형자산이 121.1% 증가할 정도로 다시
막강한 펀드로 부활했다.
소로스의 탁월한 능력은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는 지난 92년 영국
중앙은행과의 싸움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해 9월 소로스는 100억달러를 유럽 외환시장에 투입해 영국 파운드화를
팔고 대신 마르크화를 대거 사들였다.
그 결과 파운드는 폭락했고 다른 개인투자자들도 소로스를 따라 파운드화
투매에 나섰다.
영국중앙은행은 수백억달러의 돈을 풀어 파운드 가치하락 저지에 나섰으나
결과는 실패.
영국은 급기야 유럽공동체(EC)의 준고정환율제도인 ERM (환율조정체계)
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소로스라는 환투기꾼에게 영국중앙은행이 백기를 든 셈이다.
물론 소로스는 이 과정에서 10억달러를 챙겼다.
퀀텀펀드의 자산규모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사들인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 다시 투자하는 레버리지 전술을
구사하고 있어 자산규모에 대한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한 것이다.
다만 국제금융계가 퀀텀펀드의 규모를 91억달러정도로 추산하고 있는
정도.
지난해 수익률은 연 30%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퀀텀펀드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93년 2월이다.
말레이시아 국적으로 설정된 "퀀텀 인터내셔널"이 바로 그것.
전체 펀드가운데 1%정도만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내증권사
국제영업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 정태웅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
D증권사에서 국제영업을 담당하는 K이사는 외국인 고객의 주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증권주 한종목에 대한 주문을 1,000만달러어치나 냈기 때문이다.
일단 주문을 처리하고 난 K이사는 이 외국계 펀드가 다른 증권사 창구를
통해 동시에 5개 증권주를 각각 10만주단위로 주문을 낸 것을 알고 또한번
놀라야 했다.
K이사가 세번째로 놀란 것은 이러한 투기적 매수가 2개월뒤 17%정도의
높은 수익률을 올려줬음을 확인하고서다.
K이사를 놀라게 만들었던 이 외국계 펀드는 미국의 대표적인 헤지펀드로
알려진 퀀텀펀드였다.
"국제금융계의 살아있는 전설" "금융의 연금술사"등으로 유명한
조지 소로스(66)가 창설한 바로 그 펀드.
소로스는 "소로스펀드 매니지먼트"라는 미국 투자회사의 총수로서 휘하에
6개의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이 퀀텀펀드다.
퀀텀펀드는 일반인의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뮤추얼펀드나 연금을 운용하는
펜션펀드와 달리 소수 갑부들의 큰돈을 모아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펀드자금은 주로 미국내 유태인들의 돈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 소로스 역시 유태인이다.
퀀텀펀드는 지난 69년 조지 소로스가 400만달러규모로 시작한 더블이글
펀드가 그 기원.
그러나 불과 4년후인 73년 소로스펀드로 이름을 바꿨을 때 규모는 4배나
늘어났다.
외환이든 증시든 상품선물이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통화 채권 주가지수
주식등 돈벌이가 되는 상품이면 어떤 것이든 공격적인 투자로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퀀텀펀드의 수익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 69년 설립후 26년간 퀀텀펀드의 연간 평균수익률은 35%에 달한다.
지난 92년과 93년에는 60%가 넘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려 이 분야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해마다 10억달러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퀀텀펀드의 화려함은 조지 소로스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소로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지난 81년 퀀텀펀드로 이름을 바꾸면서 소로스는 다른 펀드매니저에게
운영을 맡기고 자신은 다른 펀드를 운용했다.
이때 퀀텀펀드는 22.9%의 자산감소를 보이고 말았다.
3년뒤 소로스가 복귀할 때까지 퀀텀펀드는 그 이전의 화려한 명성을 잠시
접어둬야 했다.
소로스 복귀후 퀀텀펀드는 87년 외형자산이 121.1% 증가할 정도로 다시
막강한 펀드로 부활했다.
소로스의 탁월한 능력은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는 지난 92년 영국
중앙은행과의 싸움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해 9월 소로스는 100억달러를 유럽 외환시장에 투입해 영국 파운드화를
팔고 대신 마르크화를 대거 사들였다.
그 결과 파운드는 폭락했고 다른 개인투자자들도 소로스를 따라 파운드화
투매에 나섰다.
영국중앙은행은 수백억달러의 돈을 풀어 파운드 가치하락 저지에 나섰으나
결과는 실패.
영국은 급기야 유럽공동체(EC)의 준고정환율제도인 ERM (환율조정체계)
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소로스라는 환투기꾼에게 영국중앙은행이 백기를 든 셈이다.
물론 소로스는 이 과정에서 10억달러를 챙겼다.
퀀텀펀드의 자산규모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사들인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 다시 투자하는 레버리지 전술을
구사하고 있어 자산규모에 대한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한 것이다.
다만 국제금융계가 퀀텀펀드의 규모를 91억달러정도로 추산하고 있는
정도.
지난해 수익률은 연 30%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퀀텀펀드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93년 2월이다.
말레이시아 국적으로 설정된 "퀀텀 인터내셔널"이 바로 그것.
전체 펀드가운데 1%정도만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국내증권사
국제영업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 정태웅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