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눈빛이 흔들린다. 그에겐 오로지 한 개의 선택만이 남았다. 생사 앞에서 벌벌 떠는 저 작은 육신의 여자를 죽게 놔둘 것인가, 도처에 존재하는 악수를 무릎 쓰고 구할 것인가. 그것은 어쩌면 선택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모두의 선택으로, 혹은 방임으로 이미 죽은 육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휴민트>(류승완)가 드디어 공개되었다. 극장과 영화산업 모두의 ‘사활 프로젝트’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휴민트>의 흥행 여부는 현재 한국영화에서 중요한 사안이다.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한국영화의 부진과 함께 한 해의 매출에 있어 1분기가 가장 결정적인 극장의 상황까지 고려하면 산업에 종사하는 모두가, 그리고 관객들 역시 <휴민트>의 개봉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수가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인 만큼 결론을 먼저 밝히자면, 이 영화, 분명 류승완 감독의 역작으로 불리게 될 작품이 아닐지. 영화는 국정원 블랙 요원 ‘조과장’(조인성)이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북한 정부로부터 아시아 어딘가의 매춘굴에 버려진 북한 여성 ‘김수린’과 접선하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조과장은 김수린을 통해 북한 고위층이 ‘빙두’라고 불리는 마약을 러시아로 유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과장은 접선 과정에서 김수린을 잃게 되고,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은 사건 조사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내내 그를 괴롭힌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는 마약과 매춘 사업에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이 연루되어 있음을 의심하고 확실한 정보를 위해 새로운 북한 정보원 ‘채선화’(신세경)를 포섭한다. 그리고 이 위
프랑스 파리 8구, 샹젤리제 인근에 자리한 영화관 엘리제 링컨(Elysées Lincoln)이 지난해 10월, 새 모습을 드러냈다. 9개월에 걸친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문을 연 이곳은 이제 단순히 영화를 ‘보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레드, 핑크, 그린으로 물든 세 개의 상영관, 파티와 이벤트 장소로 변신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 구성, 극장 자체를 하나의 감성적인 경험이 되도록 설계한 인테리어. 영화관의 전형성을 탈피한 엘리제 링컨은 일부러 찾아가는 극장으로 주목받고 있다.엘리제 링컨은 20세기 초 창립자 보리스 구레비치 이후 4대째 같은 가족이 운영해온 독립 예술영화관이다. 이 유서 깊은 극장도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며 위기에 처했다. 파리시에 따르면 샹젤리제 일대 영화관의 티켓 판매량은 2014년 190만 장에서 2024년 13만3000장으로 급감했다. 엘리제 링컨의 운영자인 루이 메를과 사뮈엘 메를 형제는 2019년, 운명의 기로에 섰다. ‘문을 닫을 것인가, 아니면 영화관으로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날 것인가’. 영화에 애정이 깊은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영화관을 남기자는 것. 그러나 그 방식은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독립 영화관의 이유 있는 변신영화관 변화의 중심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루이 드나보가 있다. 그는 커리어 초기 약 20년간 영화관 설계를 전문으로 해온 에이전시 ABFM에서 활동하며 극장이 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증인이기도 하다.“엘리제 링컨 프로젝트 의뢰가 왔을 때 정말 흥분했어요. 창의성이 가장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면, 바로 영화의 세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첫 미팅에서 메를 형제는 드나보
풍월당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성역과 같은 곳이다. 서울 압구정로데오거리 한편에 자리한 이곳은 음반매장이자 음악 강연장, 음악 감상실로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과 23년간 함께했다. 개관 이후 음반은 클래식 음악만 취급하던 풍월당이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겠다”며 지난달 임시 휴업을 알렸다. 온라인 스트리밍이 보편화한 시대, 실물 음반이 설 자리가 또 사라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 클래식 음악계가 술렁였다.“더 이상 음반을 판매하진 않습니다. 다만 공간을 새롭게 쓰려고 합니다. 시대별로 여러 예술을 나눌 수 있는 라이브러리(도서관)를 만들 겁니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최근 풍월당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실물 음반 경기가 갑자기 어려워져 닫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 이야기는 오해입니다. 처음 매장을 연 2003년에도 레코드 매장이 국내에서만 수천 개가 사라졌어요. 그때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청취 방식이 바뀌고 있었죠. 음반이 없어지면 클래식 음악이 없어진다고 생각해서 가게를 시작했어요. 음악에 대한 연명 치료 같은 것이었죠.”“편안하게 예술 나눌 라이브러리 만든다”박 대표는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정신과 의사였다. 지금은 진료를 보지 않고 매년 수차례 유럽을 돌며 주요 음악제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15년째 참석을 이어온 그에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측이 먼저 연락해 좌석을 고르도록 신경 쓸 정도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을 담아 연 레코드 가게는 흑자보다 적자를 볼 때가 많았다. 옛것을 지키는 자들이 마주하곤 하는 경영난을 타개하고자 음악 강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