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이 올들어 벌어진 국제기전을 잇달아 제패하며 지난해의
부진을 딛고 세계바둑 최정상자리를 다져 나가고 있다.

바둑황제 조훈현 구단과 바둑천재 이창호 칠단이 그 주역.

사제관계인 조구단과 이칠단은 올들어 벌어진 진로배와 동양증권배
결승전에서 각각 중국의 마샤오춘 구단을 꺾으며 한국바둑의 위상을
다시 드높이고 있다.

조훈현.이창호가 멋진 콤비를 이루며 국제기전에서 중국과 일본기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며 세계바둑을 석권하고 있는 것.

그 첫번째가 지난 2월 중국 상해에서 벌어진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대국.

한국의 마지막 주자 조훈현 구단과 중국의 마샤오춘 구단이 반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마구단은 지난해 혜성같이 나타나 중국기계를 평정하고 국제기전인
동양증권배와 후지쯔배를 우승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는
기사.

마구단은 하루전 올들어 한번도 진적이 없는 한국바둑의 1인자 이창호
칠단을 꺾어 다시한번 괴력을 과시했다.

큰 대회에 강한 조훈현은 이날 마구단을 맞아 초반 열세를 딛고
통쾌한 역전승으로 이끌어 한국팀에 진로배를 안겼다.

동시에 제자 이창호의 패배를 하룻만에 깨끗이 설욕했다.

동양증권배에서는 반대 상황이 연출됐다.

세계최정상 자리를 놓고 이번에는 이창호 칠단과 마샤오춘 구단이
결승전에서 격돌했다.

지난 1월에 있었던 이대회 준결승전에서 마구단은 조훈현 구단을
2대1로 제압하고 결승5번기를 벌이게 된것.

이칠단은 실리바둑의 대가 마구단을 맞아 제3국까지 실리바둑으로 같이 맞섰다.

"신산자"답게 이칠단은 반집승을 거두는 등 2승1패로 앞서나갔다.

지난 2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벌어진 제4국에서 이칠단은 지난 3국까지
와는 달리 대세력작전을 구사, 실리바둑을 고집한 마구단에 불계승을
거두며 종함전적 3승1패를 기록하며 동양증권배를 3년만에 품에 안으며
세계바둑 최강자 자리에 올랐다.

이번대회 준결승전에서 당한 스승 조훈현구단의 패배를 이번엔 제자가
대신 설욕한 셈.

또 이칠단은 지난 진로배에서 당한 패배의 아픔을 다시 마구단에게
돌려줬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의 이처럼 멋진 사제콤비도 국내에서는 냉엄한
승부의 세계로 돌아간다.

이창호 칠단이 국내 타이틀전 19연승을 질주하는 등 1인 천하시대를
구축하고 있는것.

여기에 바둑황제 조구단이 제자 이창호의 아성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무관탈출을 꾀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조구단은 올들어 패왕전에서만 2승2패로 선전하고 있고
그밖의 타이틀전에서는 한번도 이기지 못하는등 제자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

올해 전적은 8승2패로 이칠단이 절대 우세.

이를두고 국내 바둑관계자들은 "국내에선 제자 이창호의 독주에
스승 조훈현이 도전하는 국면이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그러나 국제기전에서 "승부사" 조훈현과 "돌부처" 이창호가 든든하게
버티는 한 한국바둑의 우위가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라며 진단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