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연극의 선구자이자 소극장 연극의 개척자인 김동훈씨가 21일
오전 서울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뇌일혈로 타계했다.

서울대 미학과 재학시절 연극을 시작한 그는 졸업하던 해인 60년
창단된 실험극장의 첫 공연 "수업" (이오네스코 작)으로 기성연극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실험극장의 대표적 레퍼토리인 "에쿠우스"를 비롯 "햄릿"
"아메리카 이브" "피가로의 결혼" "심판" 등 숱한 작품에 출연했으며
"티타임의 정사" "사랑의 윤무"를 통해 연출가로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제1회 이해랑 연극상, 동아연극상 남우주연상 2회, 한국 비평가그룹상
연기 및 연출상 2회, 한국 문화예술 연극부문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90년에는 대한민국예술상 연극부문상을 받았다.

아울러 넉넉한 품성으로 83~86년 한국 연극협회이사장과 84~86년
한국 예총부회장을 지냈다.

그는 또 국내 소극장 연극을 개척, 꽃피운 것으로 유명하다.

73년 실험극장의 대표가 된 뒤 93년 종로구 운니동 시대를 마감하고
연극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압구정동으로 극장을 옮기면서도 관객과
가장 가깝게 만날수 있는 소극장 연극을 포기하지 않고 연극팬 확산
작업에 앞장섰기 때문.

국내 소극장 연극의 역사는 사실상 실험극장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쿠우스" "신의 아그네스" 등이 모두 실험극장 작품이고, 최근에도
버스를 앞세운 주부관객 열풍의 진원지는 대부분 실험극장이었다.

압구정동 실험극장은 "셜리 발렌타인" "11월의 왈츠" 등의 명배우
시리즈 기획을 통해 문화예술 불모지인 강남에 연극공연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서인석 강태기 송승환 이승호 최민식 윤석화 황정아 이정희 김순이
차유경씨 등 현재 한국 연극.방송계의 내로라 할 스타들이 모두 실험극장
출신인 점 또한 실험극장이 한국 현대연극사에 끼친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

유족은 성우인 부인 장유진씨와 1남1녀.

< 김수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