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4일부터 골프장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필자와 함께 골프를 쳐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은 이르지
않나"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채 따라 나섰었다.

그런데 스코어는 무려 92타였다.

그것도 캐디가 정확히 기록하지 않은 덕택이었다.

아마도 그날 필자와 함께 라운드했던 사람들은 핸디캡5라 하던 필자의
골프가 과장되었음을 충분히 알아 차렸을 것이다.

뒤이어 지난 3월 첫째 주말에도 골프를했다.

스코어는 여전히 8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겨우내 연습했던 필자로서도 약간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엊그제 주말 다시 골프장에 가게됐다.

며칠전 평소 알고 지내오던 후배가 골프에 입문하겠다고 하여 2년여
동안 가지고 있던 골프채를 몽땅 주고 나서 어렵사리 새 채를 장만한지
사흘밖에 되지 않아 골프채마저 낯선데 또 골프장에 가게 된 것이다.

앞서 밝힌바와 같이 겨우내 연습하였음에도 센드웨지 어프로치샷은
자주 뒤땅으로 털썩대고 드라이버샷은 종종 슬라이스마저 나타났다.

나는 난생 처음 "골프장에 가자는 말이 달갑지 않음"을 느꼈다.

그래도 "골프가 안돼서 가지 않겠다"는 말은 도저히 할수없어 하는
수없이 따라 나섰다.

그런데 골프장에서 만난 동반자들은 예상과 달리 내기를 하자고 했다.

소변호사는 골프를 하면서 내기하지 않는다는 소문은 익히들어 알고
있지만 오늘은 캐디피와 그들집값을 분배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 내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골프를 배운 10여년만에 처음으로 내기 골프에 동참해 보았다.

물론 내기에 져도 좋으니 내 핸디캡이나 유지하기를 소망하면서.

하지만 골프장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과연 세상살이는 성실하게 하여야 하는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즉 얼마전까지 보기플레이수준을 맴돌던 필자의 스코어는 75타였다.

첫 두 홀과 7, 8홀 등 네개 홀에서 보기를 하고 12번홀에서 더블보기를
한 반면 버디 셋을 기록하였던 것이다.

물론 겨우내 연습장에서 가지고 놀던 샌드웨지는 예상대로 몇번인가
털썩댔다.

특히 더블보기를 한 12번홀에서는 연이어 두번이나 털썩 거렸다.

그러나 17번홀에서는 스무발자국도 넘는 거리의 어프로치샷이 그대로
홀인되어 겨우내 연습한 보람을 만끽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골프가 끝나고 식당에 모여 앉아 커피를 한잔씩 마시는 자리에서
내기 하자던 동반플레이어 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그분은 1967년께부터 골프를 했고 골프가 유일한 취미생활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얼마전 드라이버샷이 말썽을 부려 레슨을 다시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인생은 늙어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알지 못한다"고 하더니만
골프를 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절로 난다"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던 필자는 문득 질문을 하나 해 보았다.

사람들은 무엇으로 "골프를 잘 한다"는 기준을 삼는 것일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