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욕의 40년 세월을 함께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11일 수의
차림으로 함께 법정에 섰다.

꿈에 부푼 육사생도로서의 첫 만남에서 부터 3142(전씨), 1432(노씨)라는
죄수번호를 달고 법정에서 상봉하기까지 그들의 반목과 우정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의 세월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전.노씨의 첫 대면은 지난 52년 육사 11기 생도로서 이뤄졌다.

성격이나 기질면에선 정반대였지만 둘도없는 동지로 지내며 유대관계를
굳게 맺은 뒤 나란히 군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육사 선두그룹인 전씨와 노씨가 결정적인 공동운명체가 된 것은 바로
12.12쿠테타.

두사람은 군권장악을 결의한 뒤 "거사일" 5일전 보안사에서 만나 정승화
육참총장의 연행일을 12월 12로 결정하면서 타서는 안될 한배를 탔다.

이후 80년 5.17조치와 광주유혈진압등의 격변기를 거쳐 전권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전씨는 보안사령관직을 노씨에게 물려줬다.

11.12대 대통령을 연임한 전씨는 81년 7월 노씨를 예편시켰다.

노씨는 전씨 밑에서 5공정권의 각료로 일하며 한때 전씨측의 냉대를
받기도 했지만 이를 감내, 결국 87년 전씨에 의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그러나 6공화국이 시작되면서 두사람 관계는 반전됐다.

전씨는 5공청산에 의해 백담사로 쫓겨나 2년간 한맺힌 세월을 보냈고
우정으로 출발했던 두사람 관계는 견원지간으로 변했다.

6공때 반목을 계속했던 전.노씨는 94년 6월, "6.25" 44돌을 맞아
국립묘지에서 참배한 뒤 한 음식점에서 대좌, 폭탄주를 마시고 어깨동무를
하며 갈등을 풀었다.

그후 95년 10월 육사 행사장에서 동기생들과 함께 만났다.

그러나 얼마되지 않아 역사의 단죄가 시작되면서 갈등은 또다시 증폭됐다.

전씨측에서 노씨가 돈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수감생활에서도 극명히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역사의 심판대 앞에 나란히 선 전.노씨는 이제 "운명의 같은 길"을
걸어가는 처지가 된 것이다.

< 김남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