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츠(AITS)전".

세계 반도체업계를 둘러싼 경영환경은 90년대 들어서면서 격변하고 있다.

기업간 전략적 제휴는 적과 동지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투자의 기본 단위(달러)가 "억"에서 "조"로 높아졌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기술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업계가 제휴(alliance) 투자(investment) 기술(technology)
점유율(share) 등 네 분야를 축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따른
결과다.

이 네가지 요소의 영문 머리글자를 딴 "에이츠"는 바로 세계 반도체 대전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에이츠전은 반도체 사업의 특성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 특성이란 짧은사이클을 주기로 제품이 고집적화된다는 것.

시장의 주력 제품이 1메가D램에서 4메가로,또 16메가로 급속히 교체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반도체의 고집적화는 메이커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세대가 교체
되는 것에 비례해서 투자규모가 커지고 기술개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미 TI사 스코트 포드 선임연구원).

에이츠란 바로 이같은 환경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예컨대 제휴를 보자.

제휴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다.

기술제휴와 자본제휴다.

반도체 업계의 기술제휴는 다른 업종과는 다른 점이 있다.

철저하게 "분업형 개발체제"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일본 반도체 메이커 10개사가 공동 연구법인을 세운게 대표적 예다.

이들 회사가 목표로 정한 기술은 기가D램 양산.

10개 회사는 각각 분야별로 연구 테마를 정했다.

각사가 프로젝트를 마친 뒤 이를 조립해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이같은 방식을 채택한 것은 개발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서다.

개발해야 하는 기술 자체가 워낙 첨단 기술인데다 주어진 시간도 짧아
독자 개발은 불가능하다는 것.

공동 개발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할 수 밖에 없게끔 돼 있다는 얘기다.

자본 제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요즘 한창 건설되고 있는 16메가D램 공장을 하나 짓는데 들어가는 돈은 약
10억달러다.

64메가D램공장은 17억달러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게 2백56메가D램에선 29억달러, 1기가D램으로 가면 87억달러로
불어날 전망이다.

"투자규모 확대에 비례해서 커진 것은 위험부담이다. 삐끗하는 날이면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져들고 만다. 따라서 위험을 나눠질 든든한 파트너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황영기 삼성전자 재무팀장.상무).

제휴가 위험을 분담하기 위한 것이라면 셰어경쟁은 힘을 비축하기 위한
것이다.

집적도가 높아지는데 비례해서 투자금액은 늘어나니까 재투자를 위해선
지금 하나라도 더 파는 것이 중요하다.

셰어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최근 반도체업계의 특징은 이처럼 부담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신규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작년 NEC 후지쓰 히타치 도시바 등 일본 4대 반도체 메이커의
투자액 합계는 55억달러규모에 이른다.

지난 94년보다 40%나 늘어난 액수다.

삼성은 19억3백만달러로 한일 기업을 통틀어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현대와 LG도 각각 13억2천5백만달러와 17억2천6백만달러를 투입했다.

"반도체 본고장"인 미국 기업들도 투자 경쟁에 가세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사가 20억달러를 들여 새 공장을 짓고 있는데 이어
사이프레스 로크웰 인터내셔널 등도 7억~12억달러를 들여올 하반기부터 새
공장을 가동키로 했다.

각 업체들이 이처럼 "브레이크 없는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은 늦어도
5년안에는 도래할 것으로 보이는 "멀티미디어 특수"를 겨냥해서다.

"멀티미디어 기기의 핵심부품은 반도체다. PC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의
시장을 호수라고 한다면 멀티미디어 시대에 도래할 시장규모는 바다라고 할
수 있다"(정몽헌 현대전자 회장).

문제는 각국 기업들이 신.증설하고 있는 공장이 대부분 올 연말과 내년
사이에 집중 가동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반도체, 특히 D램은 그동안의 만성적인 공급 부족시대를 벗어날게 분명
하다. 적자생존의 치열한 시장 다툼이 전개될 것도 불문가지다"
(일본경제신문 무라이 고키 샌호제이 특파원).

요컨대 임박한 무한경쟁 시대에 한국 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
투자뿐 아니라 제휴 기술 시장점유율 등 모든 측면(에이츠)에서 확고한
경쟁 우위를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반도체 업계가 진정한 세계 정상에 등극하기 위해서는 넘고 건너야
할 산과 골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 샌호제이(미캘리포니아주)=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