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은 본질적으로 규제산업이다.

금융업은 정부의 엄격한 허가를 통해 성립하는 특별한 산업분야다.

그것이 일반 산업과의 차이점이다.

규제는 명확한 법적 근거와 투명하고도 일관성 있는 기준이 적용될 때
비로소 모두가 받아들이고 승복하는 "의미있는 규제"가 된다.

법조문이 무한으로 확장 해석되고 해석의 여지가 지나치게 넓다면 그때의
규제는 정책의 실패로 되고 만다.

현대그룹이 국민투신 주식을 매입했다가 되팔아야 하는 이번 해프닝은
정부 행정의 적절성과 관련해 몇가지 생각해볼 여지를 남기고 있다.

물론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을 막아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부가 관련 규정을 "취지"라는 이름으로 확장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조사"라는 엄포를 동원해 문제를 원점으로 돌려야하는지는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현행 투자신탁업법과 공정거래법 나아가 증권거래법은 이른바 "위성재벌"의
문제에 관해 어떠한 구체적인 규제의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이점은 분명 규정의 헛점이다.

대기업 집단들은 그동안 이 헛점을 이용해 세력확장을 도모해왔고 정부는
그때마다 규정의 불비를 자인해왔다.

과연 위성재벌을 포괄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규정이 원천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말이 위성재벌이지 이미 그들간에도 불꽃 튀는 치열한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만일 위성재벌을 명문으로 규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아예 허용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규정에도 없는 것을 정부가 임의로 규제한다면 이는 정부권한의 무한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규정에 열거된 것외엔 모두 허용되는 그런 규제여야만 실효성있으며 모두가
승복하게 된다.

진입 자체보다는 공정한 경쟁부문에 그물을 치는 규제전략의 우회를 생각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 정규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