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시어와 날카로운 감각으로 주목 받아온 젊은시인 2명이 신작
시집을 나란히 출간, 초봄 문단에 싱그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선영씨(32)의 "글자속에 나를 구겨넣는다"와 성윤석씨(30)의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동네"가 그것 (문학과 지성사 간).

두사람 모두 90년에 등단한 신진그룹에 속하지만 실험성을 앞세운 여타
시인들과 달리 정통문법을 바탕으로 언어의 미감을 추구해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이선영씨의 "글자속에 나를 구겨넣는다"는 글자라는 "사유의 집"을
통해 기호처럼 파편화된 현대인의 삶을 깊이있게 탐색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글자는 말의 재료가 아니라 구애의 대상이며 육체가
거주하는 생명의 집이다.

첫시집 "오, 가엾은 비눗갑들"에서 삶을 비누방울처럼 명멸하는 존재로
포착했던 그는 "막막한 거품덩어리를 기어이 받아들이겠다는 그대"를
껴안고 거품에서 빠져나와 단단한 글자의 집을 짓는다.

이번 시집에서 글자들은 제각기 살아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시인은 글자와 대화하고 그 속으로 드나든다.

그의 사랑은 "돌아가서 지키고 가꿔야할 내글자의 집이 있는데"도
"글자 밖에서 해 기우는 줄 모르고" 서성이다가 마침내 "손으로
그 마음을 잡아둘 수 없는 당신을/글자 속에 꽁꽁 가둬 내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종이 위에 함께 살게 하려고/종이 위에 깨알같은
글자들을 쓴다"는 행위로 구체화된다.

성윤석씨의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는 독특한 리듬을 담고
있다.

말을 다루는 솜씨나 일상속의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관찰력도 돋보인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도시의 풍경.

그러나 이 도시는 거대한 현대문명의 몸체라기보다 "늦은밤의 분식집"과
"네온사인에서 떠오르는 별"이 함께 있는 동네골목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시인은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 골목마다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의 영화적 상상력은 인디언표 티셔츠에서 추장의 고뇌를 잡아낸다.

"추장은 괴로/운 생각으로 뒤척이며 잠들었지만, 아침마/다 쏟아지는
뉴모드 여름옷에 박힌 자신의/모습을 한번도 눈치채진 못했다"
(인디언표 티셔츠) 독특한 리듬감과 파격적인 행가르기도 눈길끄는
요소.

"그래, 난난난난 난난난 눈이 쏟아진다"거나 "안개가 쟁쟁 울렸다"는
표현들은 "나귀를 타고 절렁절렁 가버린" 사랑과 "어디를 거칠게 다녀와
내 허파꽈리를 쑤욱 건너가는 전철" 등으로 대귀를 이루며 자유롭게
옮겨다닌다.

"거친 비바람 몰려오겠다"며 "풍경소리 차르릉 차르릉" 울리는 성주사로
향하는 시인의 여정은 세속도시의 먼지를 씻는 구도적 이미지로 다가온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