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개발전략을 둘러싸고 중국이 흔들리고 있다.

79년에 개혁.개방정책을 시작한 이래 16년.

등소평의 관심으로 건설된 광동성의 심천 주해 산두와 복건성의 하문,
그리고 해남성등 5개 경제특구를 둘러싸고 우대정책폐지등 시정의 목소리가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경제특구의 존재가 연해부와 내륙부의 경제격차를 심화시켰고 부패를 만연
시킨 원흉이라는 것 등이 그 이유다.

경제특구폐지론의 선두주자는 강택민국가주석 주용기부총리의 정책브레인인
중국과학원 국정분석연구소조의 호안강씨다.

호씨는 폐지이유로 연해부와 내륙부의 극심한 격차문제를 꼽고 있다.

지난 93년도의 1인당 GDP를 성별로 보면 격차가 실로 심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최고는 상해로 1만1천7백인민폐(1천4백44달러), 최저는 귀주성으로 1천
34인민폐(1백28달러)로서 무려 11.3배의 차이가 있다.

주목해야 할것은 1인당 GDP가 높은 산동성이하 복건 해남 강소 절강 광동
요령 천진 북경 상해등 각 성.시는 전부 연해지역에 속하고 귀주성이하 낮은
성은 전부 내륙지역에 속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욱 연해부와 내륙부의 격차가 커지면 정치 경제의 안정에 심각한
영향을 줄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다.

경제특구는 사회주의체제하에서 시장경제 "실험"을 하기 위해 설치됐다.

실험단계에 있어선 연해지역이 우대정책에 의해 먼저 부유해지는 것은
부득이 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전국이 공평하게 발전해야 하기에 호씨는 "경제특구가
한 역할은 충분히 평가하지만 이제 이 특구의 역사적 역할은 끝났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화남지역의 경제특구와는 달리 최근 외자기업의 진출이 줄지은 곳이 상해
포동신구다.

포동개발은 상해 낡은 시가지의 강건너편 황포강 동쪽에 자리잡은 5백20만
평방km의 지역을 2050년까지 3단계로 나누어 개발하는 것으로 90년도에
중국정부가 최중점 프로젝트로 인정, 급속도로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는 제1단계(91~95년)의 10대 기초시설건설인 (1)남포대교 (2)양원대교
(3)장고로확장 (4)내환상도로 (5)외고교부두(제1기) (6)포동가스 (7)통신
시설확장 (8)능교정수장 (9)오수처리 (10)외고교발전소(제1기)등이 거의
끝나고 기능적 개발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포동개발은 중국남쪽의 경제특구개발과는 다른 특색이 있다.

첫째 경제특구는 제한된 지역에서의 시장경제의 "실험장"이라는 의미가
강했지만 포동개발은 장강(양자강)유역 일대 내륙지역으로의 경제파급효과를
담당한 국가전략지로서의 상해를 21세기 국제경제 금융 무역중심지로
만든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지방의 개방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둘째 포동에대한 투자 주력은 다국적기업및 거대기업으로서 투자액 1천만
달러이상의 대형건이 많다.

심천경제특구로의 평균투자액이 61만달러인데 비해 포동의 금교수출가공구
로의 평균투자액은 1천3백만달러이다.

셋째 경제특구 개발자금의 대부분은 홍콩이나 대만등 화교자본인데 비해
포동개발은 거의 국내자금으로 공급했다.

포동자체가 국가로부터 우대받고 있는 것이다.

넷째 경제특구에선 위탁가공등 노동집약형 산업이 대부분을 차지한데 비해
포동에선 기술집약형및 하이테크산업의 투자를 환영하고 있다.

다섯째 국제 금융.무역센터를 목표로하는 상해는 예전엔 외자에 개방하지
않던 상업 부동산 무역 금융업등 제3차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2000년까지 제3차산업의 비율을 45%로 할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의 90년대 지역개발전략은 80년대와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개혁.개방의 중심지역은 남방의 경제특구로부터 상해.장강(양자강)유역으로
이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지역개발전략 변화는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내륙지역 경제를 끌어
올려 지역적 균형발전을 가져오겠다는 의미다.

중국투자를 서두르는 우리기업들도 이러한 변화의 큰 줄기를 새겨봐야
할때이다.

< 북경=최필규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