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을 맞는 박광수 감독(41)의 감회는 남다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로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한데다 해외에서의
지명도에 힘입어 굵직한 국제영화제와 배급사들로부터 출품.배급의뢰가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방한중인 세계적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와 베를린 영화제
출품에 관한 세부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차례씩 만나는 등
눈코뜰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2월말 베를린 영화제가 끝나면 곧 홍콩 영화제와 센프란시스코 아시아.
아메리칸 영화제에 참가한다.

3~4월께는 영화제작과정을 담은 30시간 분량의 필름을 재편집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비디오를 내놓고 제작배경
및 현장일지를 정리한 책도 펴낼 생각이다.

하반기에는 현기영씨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를 원작으로 한 대형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원작중 "이재수의 난"을 중심으로 다룰 이 영화는 그가 10년전부터
준비해온 야심작이다.

제작비는 최소한 20억원이상.

프랑스 신부와 함대 등이 등장하는 만큼 프랑스측과 합작을 모색하고
있다.

85년 프랑스 영화교육특수학교(ESEC)에서 수학하면서 그는 프랑스
사람들이 1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과정을 거치는지
확인했다.

따라서 프랑스와의 합작은 자본의 결합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한 정신적
제휴라는 의미도 갖는다.

"국제무대에서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은 독창성과 진실성입니다.

독창성은 새로운 영화형식에 대한 실험적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고,
진실성은 인간과 역사를 보는 시각이 얼마나 깊이있는가 하는거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경우 서구사람들은 분신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해요.

현실이 그토록 불합리하다면 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정면으로
대결해야지 왜 스스로를 불태우느냐는 거죠"

한국인의 정서를 모르는데서 비롯된 의문인데 뒤집어보면 이러한 문화적
특수성이 그사람들한테는 한국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관심이 더 큰 것같다고.

유럽의 대표적인 배급사인 포티 시모사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배급하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간 우리영화의 해외배급이 대부분 한국인과 관련된 회사에서 이뤄진데
반해 이번 배급은 외국인들로만 구성된 배급사가 맡은 것이 특징.

한국사회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그려온 그의 작품세계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칠수와 만수"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 "그섬에 가고 싶다"
등이 모두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감성과 의식을 조화롭게 접목시키는 그의 영화정신이 문화대국으로
가는 길을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