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그룹의 96년 정기인사가 거의 마무리됐다.

이번 정기인사에선 예외없이 대규모 승진인사가 동반됐다.

연공서열에서 탈피한 발탁인사도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소리없이 사라진 임원들도 많았다.

재계 정기인사에서 나타난 특징과 의미를 시리즈로 짚어본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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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재계인사의 모토는 "세대교체"였다.

특히 전문경영인의 세대교체 바람이 거셌다.

이는 지난해 초부터 두드러진 창업 1세대의 퇴진 흐름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세대교체의 바람을 타고 새로운 스타들도 탄생했다.

"40대" 사장이 그들이다.

삼성그룹에선 3명의 40대 사장이 무더기로 배출됐다.

이윤우 삼성전자반도체부문사장과 이학수 삼성화재대표, 이중구
영상사업단대표가 그 주인공.

이들은 모두 46년생 동갑나기다.

대우그룹의 정기인사에서도 2명의 40대 사장이 배출됐다.

추호석 대우중공업기계부문사장(44)과 신영균 조선부문사장(49)이다.

진로그룹은 문상목 진로사장을 비롯 홍훈기 진로종합식품사장과 연합전선
김병수사장등 3명의 40대 사장을 배출했다.

쌍용그룹의 안종원(주)쌍용사장(48) 역시 그룹내 40대 선두주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개발경제기에나 있음직한 40대 사장이 90년대 후반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무더기로 탄생한 것은 최근의 경제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실 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던 70년대에는 40대 사장은 그다지 특별
스럽지 않던 현상이다.

30대 사장도 심심찮게 배출되곤 했다.

입사 12년만에 사장에 오른 이명박의원(전 현대건설 사장)이나 30대에
대표이사를 단 이수빈 삼성생명회장 등이 대표적인 예.

그러나 지금은 21세기를 5년 앞둔 때다.

기업의 성장에도 한계가 찾아오고 인사적체는 폭발 일보직전이다.

"40대 사장"은 고사하고 "50대 부장"도 흔한 시대다.

국내 10대그룹내에선 적어도 90년대 들어 40대 사장이 한명도 없었다.

이같은 배경에서 "40대"사장이 잇따라 탄생하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산술적으로 40대란 30대의 정열과 50대의 경륜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나이.

보다 진취적인 경영진이 필요하다는 오너측의 "의지"가 우선 엿보인다.

40대 사장의 필요성은 또 있다.

국내기업들은 최근 정보통신이나 유통등으로 업종을 다양화하면서 보다
강력한 추진력과 국제감각을 두루 갖춘 전천후 경영인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역사가 길어지는 만큼 조직이 젊어지지 않으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젊은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데는 아무래도 젊은 경영인의 감각이 낫다.

30대 임원의 대량 배출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삼성그룹에서만 올해 11명의 30대 임원이 탄생했다.

현대(8명) LG(10명)그룹에서도 30대 "별"들이 다수 배출됐다.

"연령파괴형"인사는 지난해 6월 동양그룹에서부터 시동이 걸렸다.

43세의 조경사장을 동양투금사장에 앉힌 것.

그는 보수적인 투금업계 최초이자 유일한 40대 사장.

또 안길룡 동양증권사장(49)도 동 업계 최연소사장으로 재직중이다.

비금융부문에도 윤홍구(46)동양산업기계대표를 비롯 심용섭 동양마트대표
(45)등 40대 사장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동양그룹의 경우 오너가 젊어지면서 소장파사장이 들어선 경우이긴 하나
40대사장시대를 선도한 기업임에 틀림없다.

물론 "40대 사장, 30대 임원"의 뒤안길에는 그림자도 있다.

우선 "조진조퇴"하는게 아니냐는 의문이다.

승진이 빠르면 물러나는 시기도 빨라진다는 것.

승진의 이면엔 퇴진도 있다.

정몽구회장체제로 출범한 현대그룹의 경우 이춘림 종합상사회장, 지주현
엘리베이터회장, 송윤재 대한알루미늄회장등 창업 1세대가 모두 일선에서
물러났다.

삼성그룹도 경주현 종합화학회장, 김정순 라이온스회장, 남정우 카드사장,
안재학 해외사업단대표등을 상담역으로 발령냈다.

또 임원중에선 적어도 65명이상이 옷을 벗었다.

LG그룹 역시 김민희 LG애드사장, 김영태 LGEDS사장, 김용선 인화원원장등
30명 이상의 고위임원들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역사가 짧은 대우그룹도 예외가 아니다.

김우중회장의 창업동지인 이우복 인력개발원장이 고등기술연구원장으로
전보되고 이경훈 비서실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은퇴했다.

장강의 도도한 흐름도 뒷물결이 몰려오는 데는 어쩔수 없는 법.

지금은 앞물결을 밀어내는 "40대 사장, 30대 임원"들도 언젠가는 밀리는
물결이 될 것은 틀림없다.

"장기적 안목보다는 눈앞의 성과에 치중하고 위기관리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론을 딛고 "40대 사장, 30대 임원"들이 보여줄 활약이 기대된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