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 이봉구특파원]

일본 반도체 메이커들이 "20년만의 랑데뷰"에 나섰다.

메모리분야 세계정상 탈환을 위한 힘을 보으기 위해서다.

NEC 히타치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10개사가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기술개발을 목표로 공동회사를 설립키로 한 것. 이 회사들이 공동투자할
액수는 3백억엔이다.

이 돈으로 12인치 웨이퍼 제조장치와 평가라인을 설치키로 했다.

반도체 제조의 핵심인 성막기술과 노광기술등을 이 라인에서 개발키로
했다.

"일본 공동전선"이 노리는 타깃의 중앙에는 메모리반도체 1위인 한국이
자리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일본업체들은 지난 70년대초 반도체기술을 민관공동으로 개발할 때
협조체제를 유지했었다.

그후 서로 극심한 경쟁관계에 들어서면서 "협력"은 상상할 수 없는
단어가 됐다.

그런 일본업체들이 차세대 기술을 기술을 공동개발해 공유하기로
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업체들에게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후발주자인 한국업체들에 의해 "반도체 일본"의 자존심이 "수몰"당한
일본업체들이 한국을 제치고 옛영광을 되찾기 위해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셈이다.

일본 업체들은 공략 포인트로 2백56메가D램과 12인치웨이퍼 관련 기술을
공동연구키로 했다.

2백56메가D램은 한국업체들이 이미 정상 정복의 깃발을 꽂은 분야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8월 세계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했다.

현대전자는 이에 뒤질세라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인 싱크로너스 방식의
2백56메가D램에서 세계 최초 개발의 기록을 세웠다.

일본업체들이 노리는 것은 양산기술의 개발이다.

개발에선 한국에 뒤졌지만 양산에서는 앞서가겠다는 것.

생산분야에서 앞선다는 것은 비즈니스에서 승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한국업체들을 따돌리고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헤게모니"를
되찾기 위한 전력투구를 결의한 셈이다.

12인치 웨이퍼 개발도 같은 맥락이다.

12인치 웨이퍼는 6인치와 8인치짜리를 잇는 차세대 웨이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아직껏 반도체 제조에 실제로 이용된 적은 없다.

하지만 2백56메가D램이상급의 고집적 반도체에선 사용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고집적 반도체의 원재료 분야 기술을 선점해 한국을 견제하자는 의도다.

일본업체들의 공동전선 구축은 사실 미국업계보다 한발 뒤진 것이다.

미국은 지난 87년 민관 합동의 연구기관인 세마테크를 세웠다.

세마테크엔 TI(텍사스 인스트루먼츠) 인텔등 대표적 반도체 메이커들이
공동연구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장비업체들도 연구에 참여 하고 있다.

반도체기술에 관한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개발하고 있는 것.

이에 반해 한국내에서는 이렇다할 공동개발 프로그램이 없다.

차세대 산업기술을 정부주도로 민간기업들이 공동개발하는 G-7프로젝트가
있긴 하다.

그러나 반도체에 관한한 별무성과다.

2백56메가D램의 공동개발 과제가 선정돼 있었지만 삼성과 현대가
각각 개발에 성공해 과제 자체가 없어져 버린 게 대표적 예다.

국내업계의 공동개발이 어려운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전력을 분산할 여유가 없었다.

"막대한 투자를 해놓은 마당에 일본 업체들을 따라 잡기 위해선
각개약진에 급급할 수 밖에 없었다.

먼 장래를 바라보고 연구인력을 공동배치한다는 것을 사치스러운
일로 여겨졌다"(전자공업진흥회 이상원부회장).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국내업체들이 일본 기업들의 도전을 뿌리치고 "메모리 1위"의 자리를
수성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택할 지 주목된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