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한 러시아의회가 안정성장궤도에 막 진입하는
단계인 러시아경제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까.

17일 실시된 국가두마(하원)선거에서 소비에트로 돌아가기를 주장하는
공산당이 승리를 거둠에 따라 러시아 경제개혁정책도 후퇴할 것으로 우려
되고 있다.

최종집계결과가 나오려면 아직 2-3일은 더 걸려야 하지만 대세는 이미
판가름난 느낌이다.

70여년간 지배해오다 한동안 잠복해 있던 공산주의세력에게 자유시장경제
추종자들이 주도권을 빼앗게 이번 러시아총선의 대세다.

러시아중앙선관위는 약 50%의 개표가 끝난 18일 오후2시(현지시간) 현재
공산당이 21.9%, 극우민족주의자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11.1%,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의 우리조국러시아당 9.6%씩
의 득표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득표순위와 득표율은 개표초반부터 변하지 않고 있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공산당은 <>사유화 전면보류 <>국가기간산업의 보호
<>사회보장제도 강화 <>시장경제체제의 전면손질 등을 공략으로 내세운
정당이다.

공산당이 의회를 다수당으로 입성했다고 해서 당장에 이런 공략들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

러시아에서는 대통령이 의회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의 거부권에 제동을 걸기 위해선 전체의원 3분의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공산당의 의석비율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공산당이 의회내 주도정당으로서 다른 정당들과 반옐친연합전선을
구축한다면 러시아의 장래는 공산당의 손아귀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4%이상을 득표한 정당중 친정부정당은 옐친친위정당인 우리
조국러시아당과 경제학자 야블린스키가 이끄는 야블로코진영, 러시아민주
선택당 등 3-4개정당에 불과하다.

이들의 의석을 모두 합쳐봐야 전체국가두마에서 20% 정도의 소수세력을
형성할 뿐이다.

나머지 80%의 의원들은 좌파성향이거나 적어도 옐친의 개혁주의노선에는
반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다.

옐친 대통령도 선거직전까지는 의회가 어떤 판으로 짜여지든 개혁.개방노선
에 수정될 수 없다고 장담했으나 내년 6월 대통령선거를 의식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무시할 수 없다.

세르게이 필라토프 대통령수석자문관은 이와관련해 "집계결과를 지켜보면서
정책노선을 수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체르도미르딘 총리도 자신의 퇴임을 비롯한 부분개각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19일부터 옐친대통령과 선거결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옐친대통령이 친서방개혁노선을 강조하는 각료 두명을 해임하고,
밀렸던 연금과 국영기업의 체불임금을 빠른 시일내 지급토록 지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결과가 4년여동안 온갖 난관을 극복하며 추진되어온 경제
개혁의 밑바탕까지 뒤바꾸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자본주의경제에 편입되어 있는 러시아가 독자적으로 다른 경제체제를
시도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공산당내부에서도 선거공략을 단순히 옐친을 비판하기 위한 수사학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공산당의 강령은 경제개혁의 속도를 늦추는 작용을 할 뿐이지 개혁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놓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제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식시장의 움직임을 보면 이런 전망이
유효함을 쉽게 알 수 있다.

개표결과가 나오기 시작한직후인 18일 모스크바주식시장은 개장초 약세로
출발했으나 장후반에는 반발매수세가 꾸준히 유입되며 모스크바타임즈
지수를 전일대비 0.7% 끌어올려 놓고 거래를 마쳤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