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골프] 클럽챔프 이야기 .. 소동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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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컨트리클럽과 뉴코리아 컨트리클럽의 클럽하우스로비에는
클럽챔피언을 표시해 놓은 벽판이 있다.
그곳에 적혀있는 챔피언 중에 가장 이름이 자주 나오는 사람은
"김기수"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챔피언이 되던 모습도 본적이
없다.
따라서 그가 실제로 얼마나 권투를 잘 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어렸을 적에 필자로 하여금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권투선수가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하기도 하였던 사람이라서, 유달리
기억하고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골프를 하면서 김기수씨가 권투선수에서 당대의
내노라하는 클럽챔프가 된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하여 골프를 잘하는지 몹시 궁금해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가 세계챔프까지 지낸 권투선수라서 운동신경이 남달리 뛰어난
사람이므로 골프를 잘하리라는 생각이 없지않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한 골프는 그처럼 남달리 발달한 운동신경만으로는
결코 잘할 수 없는 운동이다.
따라서 그에게 골프를 잘하는 남다른 비결리 틀림없이 숨겨져 있으리라
여겨져, 그 비결이 무엇인지 늘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필자는 우연히 한양컨트리클럽의 한 직원으로부터 어느해
인가는 김기수씨가 일년중 단 하루만 골프장에 나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후부터 필자는 김기수씨가 클럽챔피언이 된 이유에 대해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았고 아울러 보지않은 그를 더욱 외경하게 되었다.
한편 1980년대 중하반기에 전국골프장의 클럽챔피언을 휩쓴 사람이
있다.
그는 "최성덕"이라는 사람이다.
앞서 본 김기수씨가 주로 두 골프장의 클럽챔피언이었음에 비해
최성덕씨는 전국방방곡곡 거의 모든 골프장의 챔피언을 지낸 사람이다.
필자는 그분도 만나 본적이 없다.
그렇지만 역시 그의 골프경력에 대해 몹시 궁금해 했었다.
그러던 중 주위사람으로부터 그분에 대한 약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대구의 부잣집 아들로 유학을 갔다가 1980년초에 귀국하였다.
체격은 별로 좋지않다고 한다.
그리고 골프를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주로 경산골프장에서 라운드했다고
한다.
그도 한참 경산골프장에서 라운드할 때에는 연중 거의 매일 그곳의
헤드프로와 함께 라운드를 하더니만 결국 클럽챔피언을 휩쓸더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퍼팅실력이 뛰어나서 최상호를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5일자).
클럽챔피언을 표시해 놓은 벽판이 있다.
그곳에 적혀있는 챔피언 중에 가장 이름이 자주 나오는 사람은
"김기수"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세계챔피언이 되던 모습도 본적이
없다.
따라서 그가 실제로 얼마나 권투를 잘 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어렸을 적에 필자로 하여금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권투선수가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하기도 하였던 사람이라서, 유달리
기억하고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골프를 하면서 김기수씨가 권투선수에서 당대의
내노라하는 클럽챔프가 된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하여 골프를 잘하는지 몹시 궁금해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가 세계챔프까지 지낸 권투선수라서 운동신경이 남달리 뛰어난
사람이므로 골프를 잘하리라는 생각이 없지않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한 골프는 그처럼 남달리 발달한 운동신경만으로는
결코 잘할 수 없는 운동이다.
따라서 그에게 골프를 잘하는 남다른 비결리 틀림없이 숨겨져 있으리라
여겨져, 그 비결이 무엇인지 늘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필자는 우연히 한양컨트리클럽의 한 직원으로부터 어느해
인가는 김기수씨가 일년중 단 하루만 골프장에 나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후부터 필자는 김기수씨가 클럽챔피언이 된 이유에 대해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았고 아울러 보지않은 그를 더욱 외경하게 되었다.
한편 1980년대 중하반기에 전국골프장의 클럽챔피언을 휩쓴 사람이
있다.
그는 "최성덕"이라는 사람이다.
앞서 본 김기수씨가 주로 두 골프장의 클럽챔피언이었음에 비해
최성덕씨는 전국방방곡곡 거의 모든 골프장의 챔피언을 지낸 사람이다.
필자는 그분도 만나 본적이 없다.
그렇지만 역시 그의 골프경력에 대해 몹시 궁금해 했었다.
그러던 중 주위사람으로부터 그분에 대한 약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대구의 부잣집 아들로 유학을 갔다가 1980년초에 귀국하였다.
체격은 별로 좋지않다고 한다.
그리고 골프를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주로 경산골프장에서 라운드했다고
한다.
그도 한참 경산골프장에서 라운드할 때에는 연중 거의 매일 그곳의
헤드프로와 함께 라운드를 하더니만 결국 클럽챔피언을 휩쓸더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퍼팅실력이 뛰어나서 최상호를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