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경기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만에 하나 현재의 수요초과 현상이 공급과잉으로 반전될 경우 국내
업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반도체업계에 "메릴린치 보고서 파문"을 계기로 "경기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발단은 미메릴린치 증권사가 지난 7일 97년이후 D램시장의 공급과잉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으면서 비롯됐다.

메릴린치는 이 보고서에서 "미국의 컴퓨터업체들이 PC(개인용 컴퓨터)
판매 둔화로 반도체 주문을 줄이고 있다"면서 "반면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지속적으로 설비를 늘리고 있어 97년 이후에는 공급과잉에 따른 경영악화가
예상된다"고 주장한 것.

메릴린치의 이같은 보고서는 즉각 세계 증권시장에서 반도체관련 주가의
동반하락을 몰고오는 "강진"을 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업계 일각에서 최근 "97년 이후가 심상치 않다"는 경계론이
고개를 들어온터여서 파장은 의외로 컸다.

특히 "대만 변수"가 이런 경계를 부추겨왔다.

대만은 97년까지 D램 생산량을 현재의 1백배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대만의 이런 움직임은 D램등 세계 메모리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해온
한국과 일본에 적신호로 작용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미국 반도체업체들도 메모리분야 설비 확충에 나서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국 반도체업체인 인텔사와 사이러스 로직사의
영업실적이 뚝 떨어지게 되자 "조짐이 나쁘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메릴린치의 보고서도 바로 이들 2개사의 최근 영업악화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국내 반도체업계는 메릴린치의 전망에 대해
"한마디로 솥뚜껑에 놀란 것일 뿐"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우선 메릴린치사가 전망의 근거로 제시한 인텔사등의 영업부진은 이들
업체의 고객사인 대형 PC업체 패커드 벨사가 부품재고를 줄이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주문을 취소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현대전자 김승일메모리사업담당 이사는 "이런 일과성 사안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의 전반적인 수급기조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적어도 오는 98~2000년까지는 현재와 같은 공급자위주 시장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10일 "반도체시장의 최근 동향"이란 자료를 통해 "97년 이후에도
반도체시장은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에서 제기하는
공급과잉건에 대해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어 우려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우선 시장수급 전망에 대해 데이터퀘스트 WSTS(세계반도체시장 통계) 등
유수 반도체조사 전문기관들의 보고서가 "2000년까지는 장밋빛"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퀘스트의 경우 내년이후 세계시장을 주도할 16메가D램의 연도별
수급상황을 예상하면서 최소한 97년까지는 연간 2천만~5천만개 이상의
공급부족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퀘스트는 최근에만 세차례나 중기 세계 반도체시장 예측을 상향
수정할 정도로 시장의 급팽창을 점치고 있다.

예컨대 98년 메모리시장 규모를 작년 가을에는 4백60억달러로 내다봤다가
올 5월에는 6백73억달러로 고쳐 예상하더니 지난 9월에는 다시 8백74억달러
로 재차 수정했다.

1년새 시장 예상치를 두배로 바꾼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주수요처인 컴퓨터산업이 멀티미디어 붐을 타고
급팽창하고 있는 것이 이같은 급팽창 전망의 근거다.

올해 4천6백만대를 형성할 것으로 보이는 세계 컴퓨터시장은 연평균
20%이상의 신장을 계속해 오는 99년에는 1억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세계 컴퓨터소프트웨어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미마이크로
소프트사가 "윈도 95"라는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컴퓨터의 주기억장치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과 합세해 반도체 대체 수요를 대거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윈텔 사이클"이라는 끝모를 호황기를 열고 있는 것.

삼성 등은 또 설령 97년이후 공급측면에서의 과당 경쟁이 일어나더라도
"타격을 받을 곳은 우리가 아니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수율과 설계능력 생산기술 등을 확보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해지면 질수록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며 타격은
아무래도 후발주자인 대만등이 입게 될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한마디로 메릴린치 보고서로 비롯된 파문을 "찻잔속 태풍"으로 가볍게
넘기고 있는게 국내 반도체업계의 분위기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