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경영난과 부도로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중소기업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18일 유창전기금속 대표 최원식(49)씨가 서울 세곡동 자신의 집
보일러실에서 손목 동맥을 끊어 자살한것을 비롯 지난 5월에는정호해운의
강태권사장이 1억3천만원의 부도를 내고 부산 M호텔에서 극약을 마시고
숨졌다.

또 금형업체 사장이던 구자성씨는 서울 정릉 청수장부근에서 목을 맸다.

조그마한 섬유업체를 경영하던 이경직씨는 사업실패를 비관, 속초의
한 콘도에서 일가족 4명이 동반자살을 하기도 했다.

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이들의 의지가 목숨까지 앗아간것이다.

중소기업인들의 자살이 줄을 잇는 것은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음을 반증한다.

경기호황은 중소기업과는 거리가 멀다.

올들어 8월까지 부도를 낸 기업은 9천1백62개사. 사상 최악의 부도사태를
빚었다는 작년의 같은 기간보다도 32.6%나 늘었다.

부도사태는 규모와 업종을 불문하고 확산되고 있다.

수십년된 중견기업이 하루 아침에 쓰러지는가 하면 업종도 섬유 피혁등
경공업위주에서 건설 기계 사무기기 금속가구 음식료품 유통등으로 번지고
있다.

올들어 부도를 냈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 가운데는 삼도물산
덕산그룹 광림기계 하나백화점 두성건설 영진건설 라이카 보배 삼익등이
포함돼 있다.

이대길디케이박스사장은 "당좌거래없이 문을 닫은 업체도 상당수에 이르며
그날 그날 급전으로 때워가는 "사실상의 부도업체"까지 포함하면 올들어
도산업체는 1만5천여개가 넘을것"으로 추정하며 부도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문제는 창업한지 10~20년된 성인기업들이 맥없이 나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의 허리역할을 해야할 이들 기업들이 경영난에 허덕이며 신음하고
있다.

중견 인쇄업체인 삼성문화인쇄의 조영승사장은 "기업하기가 6.25때
피난생활보다 더 힘들다"고 말한다.

중소 중견기업 부도의 1차적인 책임은 물론 경영자의 몫이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대응이 미흡한데서 비롯된 점을
부인할수 없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이 동시 다발적으로 부도를 내는 데는 분명 구조적인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는게 업계및 학계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중소기업 세계화연구회의 이병서이사장은 "왜곡된 자금시장구조 인력공급
정책의 혼선 장기어음의 병폐 일관성없고 실효성 없는 중소기업정책이
기업을 병들게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대기업에겐 과감하게 신용대출해 주는 금융기관들도 중소기업에겐
대출금액의 1백50%이상을 담보로 챙기기 일쑤고 사람이 남아돌아 군살빼기에
고민하는 대기업과는 달리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어 기계를 놀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더욱 중소기업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받을어음의 부도이다.

거래상대방의 예기치 않은 부도는 연쇄부도를 부른다.

기협중앙회 공제기금창구엔 부도어음을 들고 대출을 받은 기업이 올들어
9월말까지 4백91개사에 달했다.

어윤배숭실대교수는 "헌법에도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싫으면 헌법을 고치든지 아니면
제대로 방향을 잡고 대책을 마련하든지 양자채택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실하게 살려고 했으나 세상이 나를 외면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창전기금속 최사장의 이같은 유서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정부 금융기관
등 각계가 지혜를 모아야 하며 차제에 어음제도의 폐지여부를 신중히
검토해야한다고 중소업계는 주장했다.

< 김낙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