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헤이니의 시집이 경쟁적
으로 출간되고 있다.

수상자발표 닷새만에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최유경역.시학사간)과
"한 자연주의자의 죽음"(권국성역. 겨레간)이 출간됐으며 "어둠으로 통하는
문" "스테이션 아일랜드" "북쪽"(이상 김정환역. 겨레)등 3권이 차례로
발간될 예정이다.

"셰이머스 헤이니 대표시선"(김성곤역.열음사)도 번역이 완료된 상태.

수상자발표 전부터 준비해온 김종길교수(고려대)의 번역본도 민음사에서
곧 나온다.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은 헤이니의 대표작 51편을 주제별로 엮은 것.

1부에는 "결혼식" "겨울이야기"등 삶과 사람들에 관한 시가 실렸고, 2부
에는 "호랑가시나무" "늪가의 참나무"등 자연을 소재로 한 목가적 시편들이,
3부에는 "최초의 왕국" "얼스터의 새벽"등 정치권력과 사회비판을 다룬
작품들이 들어 있다.

헤이니는 이들 시편에서 "나는 깨달았다. 왜 처음부터/오솔길이 숨을 쉬고
있었는지를"(오솔길), "그렇게 머나먼 북쪽에서 보면/차라리 시베리아는
그래도 남쪽이다"(사할린의 체홉)라고 적고 있다.

삶과 역사에 대한 그의 인식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학사는 지난7월 "20세기의 시인들"을 기획, 헤이니를 포함한 영미시인들
의 작품을 번역하던중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자 서둘러 출간했다고 밝혔다.

"한 자연주의자의 죽음"은 65~75년 출간된 5권의 시집중에서 시인이 직접
선별한 대표작 선집.

그의 창작활동 첫 10년을 조명할수 있도록 꾸며졌다.

1부 "한 자연주의자의 죽음"은 66년 출간된 동명시집에서 뽑은 표제작과
"시상의 근원" "아란의 연인들"등 12편을 담고 있으며 2부 "어둠에 이르는
문"은 "대장간" "아내의 이야기"등 13편, 3부 "겨울나기"는 "애너호리쉬"등
9편을 담고 있다.

4~5부에는 "북에 있는 보물" "북쪽"등 23편이 들어 있다.

"내 검지와 엄지 사이에/몽당연필이 놓여 있다/내 나라 역사와 슬픔을
노래할수 있는 무기처럼"으로 시작되는 시 "땅파기"는 조국과 시인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수작.

셰이머스 헤이니는 39년 북아일랜드 델리에서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농부의
9형제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독립에 대한 열망을 지닌채 영국식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이러한
갈등은 그의 문학세계에 그대로 나타났다.

내전으로 얼룩진 도시와 평화로운 농촌, 기독교와 무신론, 억압과 분출,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그는 아일랜드 고유어로 비극적인 역사를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배타적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고 인간과 삶의 보편적 가치를
작품속에 녹여내 "예이츠 이래 최고의 아일랜드 시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10권의 시집이 15만부이상 팔리는 행운을 얻었다.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