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에 한국을 알린다"

기업들이 해외 각국에 "한국"의 이미지를 널리 심는 전도사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삼성 LG 대우 포항제철 코오롱 대농 고합 등 대기업들이 특히 앞장서고
있다.

전도 내용은 한국어와 한국학.

해외에 한국에 대한 총체적인 이미지를 바로 심는데는 이들 분야에 대한
교육.연구 붐을 조성시키는게 최상이라는 판단에서다.

대상은 주로 외국 유수대학 등 교육기관이다.

이들 교육.연구기관에 대한 "전도"야 말로 문화 한국을 알리는 "선교효과"
가 가장 크기 때문.

고합그룹은 이달초 러시아 극동지역의 블라디보스톡시 당국에 2백만달러를
기증했다.

국립 극동대가 한국학 연구와 교육을 전담하는 단과대학(가칭 한국대학)을
설립키로 한 데 대해 재정지원을 해 준 것이다.

고합은 이에앞서 올초에는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대학이 설치키로 한 국제
한국학 센터 후원기금으로 2만5천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삼성그룹은 지난 5월 미국 대학위원회에 50만달러를 전달했다.

미국측에 대학수능시험인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 선택과목 중의 하나로 선정토록 하는 조건으로 기금을 낸 것.

이에따라 한국어는 오는 97년 11월부터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히브리 중국 일본 등 쟁쟁한 외국어에 이어 미국 대학입시에서 9번째
제2외국어 대상과목으로 채택된다.

LG그룹은 올 4월 미국 뉴욕대학교(SUNY) 버팔로캠퍼스에 20만달러를 출연
했다.

한국학 연구기금으로 써달라는 꼬리표를 붙인 건 물론이다.

코오롱그룹도 외국인을 상대로 한 한국학 전파사업에 적극적이다.

외국 유수대학의 졸업예정자와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장학생을 뽑아 한국의
정규대학원 석사과정에 유학시키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한국을 알게 하는 것도 세계화의 일환"(이동찬회장)이란 판단
에 따라서다.

코오롱은 이 제도에 따라 지난 3월 뜻있는 장학사업을 폈다.

미국의 흑인 학생 3명을 장학생으로 선발해 2년 과정의 연세대 국제대학원
에 입학시킨 것.

몇해전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폭발했던 이른바 "한.흑갈등"을
근원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미국내 흑인 엘리트들에게 한국을 바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코오롱 장학생으로 연세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뉴욕 출신의 흑인장학생
싱클레어 로버트 올리버 2세(37)는 "한국의 전통 유교사상에 깊이 매료돼
있다"며 "한국이 문화.경제적으로 급성장한 과정과 철강 전자 조선 등 현대
산업에서 일궈낸 성과를 심층적으로 공부해 미국 경제가 본받아야 할 점을
중점 연구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한화 두산등도 외국인 대상의 한국알리기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두산그룹은 올해부터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의 한국어과 학생들과 자매
결연을 맺고 국내 초청 한국어연수 지원사업을 펴기 시작했다.

한화그룹은 해외 유수대학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골라 1년간 국내 연수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어 연수를 비롯해 정기적인 여행과 문화유적지 답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재계에 해외 한국알리기 운동이 붐을 이루면서 한국 국제교류재단은
기업들을 상대로 한 "지정 기부사업"이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기업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이들이 지정한 외국의 대학이나
문화기관에 전달하는 사업.교류재단은 단지 기업들의 후원금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재단 자체의 축적된 해외 한국학및 문화교류 지원에 대한
노하우를 활용하는 1석2조의 효과를 낸다.

포항제철 대농 동방유량 등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한국알리기 사업을
펴고 있는 케이스다.

포철은 미국 하와이대학의 동서문화센터(EWC)에 한국학 연구지원비 1백
50만달러, 텍사스 오스틴대학에는 한국학 강좌와 교수직 설치기금으로 1백
50만달러를 각각 내놓기로 했다.

이에앞서 대농그룹은 최근 미국 조지타운대에 한국학 교수직 설치기금으로
1백50만달러를 냈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는 한국학 장학기금으로 50만달러를
출연했다.

동방유량은 작년부터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 한국학센터 운영기금으로 매년
20만달러씩을 지원하고 있다.

오는 98년까지 총 1백만달러를 후원한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이 이같이 외국 학계와 문화계를 대상으로 한국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문화 한국을 바로 알려야만 궁극적으로 한국기업과 상품의
이미지 제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장치혁고합그룹 회장)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얼마전 한국 갤럽조사연구소가 해외에서의 국가별 상품인지도를 조사한
결과는 특히 업계에 충격적이었다.

자동차를 제대로 수출도 않고 있는 중국자동차에 대한 인지도가 한국산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

요컨대 국가의 총체적 이미지가 개별 기업이나 상품의 이미지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