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시심 풍성한 시의 나라로 오세요"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에서 혜화여고 방면으로 20m쯤 가다보면 초록색
바탕에 하얀 글씨의 "한국시문화회관"(대표김경민)간판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토요일 저녁마다 유명 시인들이 나와 자작시를 낭송하고
문학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는 토요문학행사가 열린다.

지난달 30일 시문화회관개관기념 문학의 밤에는 시인 정대구 박상배
이수화 이탄 이근배 민용태 나태주씨가 참석해 주옥같은 시를 들려줬다.

"돌아가야 한다/해마다 나고 죽은 풀잎들이/잔잔하게 깔아놓은/.../
사랑하는 여자의 가졌던 말을/끝내 홀로 가지고 간 말을 들으러/
그러면 나이 먹지 않은 나의 마을은/옛 모습 그대로 나를 받으며/
커단 손바닥으로 얼굴을 닦아주고/잊었던 말들을 모두 찾아줄/
슬픔의 땅, 나의 리야잔으로"(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이근배)

시인의 음성이 보도위를 스치는 낙엽처럼 낮게 깔리는 동안 관객들은
눈을 감고 감미로운 운율에 젖어들었다.

100평 남짓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문학을 사랑하고 시를
즐기는 여성들. 고단한 일상의 손을 놓고 삶의 심연으로부터 꿈을
퍼올리는 표정들이 꿈많던 문학소녀 시절로 돌아간듯 했다.

차향기가 짙어가면서 시인이자 음악가인 이혜영씨의 피아노 연주 "쇼팽의
야상곡"이 흐르자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었다.

7일 유안진씨가 초대시인으로 참석했을때도 시문화회관은 온통 문학의
향기로 가득찼다.

14,21일에는 김춘수 구상씨가 각각 대표작을 낭송한다.

또 28~30일 충주호에서 문학캠프가 열린다.

84년 "시원"으로 출발한 시문화회관은 87년 명륜동 고대병원옆에 첫
둥지를 틀고 시문예지 "꿈과 시"발간과 토요문학행사를 시작했으며 지난
8월 5층짜리 빌딩을 구입해 이전개관했다.

국내최초의 시전문서점 "시의 백성"과 시낭송및 연극공연무대, "시가
있는 영화"등 명화를 감상할수있는 와이드비젼,2만여권의 장서가 비치된
시집도서관이 마련돼 있다.

매주 수.금요일 개최되는 여성문예교실과 시전문 목요창작교실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김경민대표(41)는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
에게 넉넉한 삶의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며 "맑고 따뜻한 시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 자신 "붉은 십자가의 묘지"(88)등 2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다.

그가 일반인들을 위해 전화시집을 개설한 것도 시에 대한 남다른
사랑때문. 전화로 700-4413(넉넉한 삶)을 누른후 91을 선택하면 새소리
물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시를 들을수 있다.

<고두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