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무대에는 처음 공식적으로 얼굴을 내미는 셈입니다.

조국을 떠나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죠. 이번 음반에는 발라드곡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 관한 생각을 실은 남성적인 곡도 함께
담았습니다.

넓은 대륙을 호령하던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살려내려 부른 "대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대만에서 정상급가수로 활동중인 장호철씨(37)가 앨범 "장호철"
(대홍기획 발매)을 낸 것을 계기로 귀국했다.

82년 유학차 대만에 갔던 그로서는 13년만의 금의환향인 셈.

그의 2집앨범(나는 조심안한게 아니오)과 3집앨범(북풍)은 북경과
상해지구 인기가요차트에서 7주간 1위를 차지했다.

"잠시 거치는 땅으로 생각했던 곳이 뜻밖에 제2의 고향이 됐습니다.

제 앨범은 중국은 물론 동남아 각국에 나가 있습니다"

한학에 조예가 깊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8살때부터 화교학교에 다닌
그에게 대만유학은 자연스런 선택이었다.

정치학도가 꿈. 그런데 문화대중문과 졸업후 대학원진학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레스토랑(나일 리버)무대에 서다가 그곳 주인(가양양)과
사랑에 빠져 결혼함으로써 인생행로가 바뀌었다.

가양양씨는 "투 브러쉬즈"라는 의류업체와 레스토랑체인을 경영하는
대만유수의 사업가.

"대만은 우리와 문화의 뿌리가 같고 감성이 비슷해서 한국가수들이
활동하기에 적합합니다.

근래에는 김완선씨가 인기를 끌고 있죠. 말만 배우면 도전해볼만한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대만인구는 2,000만명. 하지만 11억 인구의 중국은 물론 동남아와
같은 문화권이어서 인접시장은 엄청나다.

장씨는 "좀더 많은 국내가수들이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에 눈을 돌려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달말 대만으로 돌아가는 그는 9월말 다시 귀국, 본격적인 국내활동을
펼 예정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