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정중동"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직대통령의 4천억원 비자금사건에 대한 검찰의 조사착수에도 불구하고
일단 겉으로는 조용한 모습이다.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 주식시장만 연일 하락세를 보일뿐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내년부터 시행되는 종합과세와 맞물리면서 금융
상품간의 자금이동에 서서히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자금시장의 평온을 전달해 주는 척도는 금리수준.

금리는 통상 사람의 열에 비교된다.

어딘가 아프면 열이 오르듯 자금시장에 이상이 생기면 금리가 오른다는
얘기다.

과거에는 대형 금융사건이 터지면 금리는 큰 폭으로 오르기도 했다.

대신 자금이 풍부하면 금리가 하락세를 보인다.

최근에는 비자금사건에도 불구하고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비교적 안정"정도가 아니라 연중 최저치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검찰의 조사가 시작된 8일에도 금융기관간 단기금리인 콜금리는 연11.5%로
전일보다 다소 올랐지만 실세금리인 3년만기회사채유통수익률을 연13.48%로
또다시 연중최저치를 경신했다.

이처럼 장단기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자금이 금융권을 이탈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은행과 투금사관계자들은 "예금이 이탈하는등 이상현상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아직은 평온"이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 상품간의 자금이동을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종합과세 대상의 금융상품에서 비과세및 절세형 상품으로의 이동이다.

특정금전신탁이나 장기채권등의 상품을 말한다.

재정경제원으로부터 비과세란 유권해석을 받은 특정금전신탁은 지난달이후
1조원이상 늘어났다.

이달 들어서도 5일까지 7백12억원 증가했다.

7월이후 신탁상품 전체증가액 2조2천억원중 절반이상을 특정금전신탁이
차지한 셈이다.

은행들은 특전금전신탁에 새로 들어온 자금이 은행내 다른 상품에서 빠져
나왔는지는 아니면 제2금융권에서 빠져 나왔는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 내부에 있는 고액예금자들의 자금이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장기채권으로의 자금유입이 이뤄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합과세대상이 아닌 장기신용은행의 5년만기 장기채권의 경우 지난
1.4분기에는 월 평균 2백억~3백억원가량 팔리는데 그쳤으나 6월이후에는
5백억~6백억원정도 팔리고 있다.

이달들어서도 5일현재 10억원가까이 판매되는등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을 정도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