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소리와 함성, 창칼로 무장한 수백명의 도적떼,
끝간데 없이 펼쳐진 초원과 헬기의 굉음.

영화 "카루나"의 몽골 로케현장이다.

이일목감독(51)은 500나한의 도둑시절 장면을 박진감있게 묘사하기위해
17-21일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몽골 현지촬영을 감행했다.

이번 촬영에는 600여필의 말과 도적떼로 분장한 500명의 몽골기마부대
특수요원, 군용헬기 1대, 워키토키 20여개가 동원됐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서북쪽으로 150km 떨어진 바양창드망 72지구.

이틀 동안의 리허설과 부분촬영에도 불구하고 새벽5시부터 시작된
본촬영준비는 오전 10시까지 계속됐다.

워낙 넓은 지역인데다 자잘한 작업지시에서부터 말과 엑스트라들의
배치까지 일일이 통역을 거쳐 진행되기 때문에 어느것 하나 손쉬운게
없다.

드디어 이감독의 "레디 고"와 함께 조명탄이 푸른 하늘로 치솟았다.

광활한 초원지대에 산재한 장비와 말, 수백명의 배우들을 일사불란
하게 지휘하는데에는 메가폰과 무전기로도 모자라 조명탄이 사용된것.

깃발과 함께 500명의 도적떼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초원을 질주했다.

전조명촬영감독이 정면에서 이들을 크로즈업하는 동안 하늘에선
3대의 카메라를 장착한 헬기가 손에 잡힐듯 선회하며 지상의 장관을
담았다.

이 장면은 헬기소리에 놀란 말떼가 흩어져서 달리는 바람에 5차례나
다시 촬영한 끝에 완성됐다.

자리를 옮겨 도적떼에게 유린당한 마을사람들이 아란존자를 찾아
고통을 호소하는 물가장면을 찍고나자 5시가 훌쩍 넘었다.

다시 차를 타고 한시간 가량 이동한 촬영팀은 52지구에서 도적떼의
마을습격장면을 찍었다.

다음날 새벽에야 끝난 이 촬영에는 몽골영화 "징기스칸"(88)에 출연했던
먀그 마르나라(48)등 3명의 몽고배우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아란존자역의 낭네 도르츠(53)은 몽골 최고의 감독이자 배우.

가옥과 천막이 불타는 광경을 보고 신이 난 소년이 자꾸 도적무리에
끼어들어 몇번씩 NG를 내기도.

말 한필 빌리는데 5달러. 엑스트라1인당 10달러씩이 지급됐다.

이번 로케장면은 비구니가 된 분님(옥소리)이 비색청자를 완성하려는
아들 진형(김정훈)에게 500나한의 얘기를 들려주며 자비와 화해의
의미를 가르치는 부분.

극중 3분 남짓한 이 장면을 위해 이감독은 몽골의 징기스필름(대표
발진냠)과 13만달러의 계약을 맺고 원정에 나선것.

그는 "미국영화보다 더 역동적이고 스펙터클한 "할리우드 컷"이
나왔다"며 "이제 우리도 얼마든지 스케일 큰 영화를 만들수 있다"고
만족해했다.

전직 문화부장관인 박진남사장(53)은 군부대와 장비동원및 촬영허가,
통관등에 많은 도움을 줬다.

그러나 사회주의잔재가 남은 몽골의 현주소를 반영하듯 곳곳에서
미숙한 점을 노출시켜 촬영팀을 안타깝게 했다.

"카루나" 촬영은 현재 90%까지 진척됐으며 추석개봉 예정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