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산업현장이 달라지고있는 모습을 실감케하는 대목은 전국사업장
곳곳에 불고 있는 산업평화의 바람이다.

지난2월 고려제강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기업들의 노사화합결의대회는
상반기에 이미 2천개를 넘어선데 이어 하반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사실 올초만 해도 산업현장이 이처럼 달라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노사화합결의대회는 "어용노조"의 "실속없는 행사"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올들어 폭발적으로 치러진 노사화합행사는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행사의 규모와 내용등 질적인 측면에서도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공단별 지역별 도별로 대규모 행사가 치러졌을 뿐만 아니라 섬유 전자
기계 유리등 전업종의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노사화합대회를 개최했다.

지난 5월27일 서부공단에서 1백50여개의 업체가 참여한 대규모 노사화합
행사를 개최한 김진억 서부공단이사장은 "생각해보면 현장의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며 "오랜 분규경험과 노사갈등으로 인한
폐해가 속속 나타남에 따라 개별사업장들이 예상보다 빨리 노사협력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임금협상의 무교섭타결과 무쟁의.무분규선언도 현장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양상으로 볼수있다.

무교섭타결은 임금인상률을 노동조합이나 사용자가운데 어느 한쪽에 위임,
협상을 별도의 교섭없이 마무리짓는 것으로 노사양측간 신뢰의 정도를
가늠케한다.

지난해까지만해도 경영상태가 어려웠던 일부사업장에서 자구책의 일환으로
이뤄졌던 무교섭타결은 올해 선경인더스트리 쌍용정유 동국제강 LG정보통신
고려제강 풍산정밀 현대엘리베이터 국제상사등 대기업만도 10여개사에
이르고 있다.

LG정보통신의 경우 지난 5월9일 구미공장에서 "노경 정도문화선포식"을
갖고 올해 임.단협을 무교섭으로 타결했다.

회사측은 통상임금 6%인상과 함께 연간 25만원의 자기계발비지원, 국민연금
회사부담금 증액, 학자금 전액지원, 근로복지기금 6억원출연등을 약속했다.

물론 당초 노조측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었다.

이회사의 김문섭노조위원장은 "올해는 회사발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신사업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며 "노경이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회사발전에
앞장선다는 의미에서 무교섭타결을 결의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무교섭타결분위기는 중소기업으로도 확산돼 모나리자 한국동양유전 한국
태양유전 환영철강공업 영흥철강 조선무약등이 임금협상을 무교섭으로
마무리지었다.

지난 6월5일 충남 당진공장에서 무교섭임금 타결식을 가진 환영철강공업의
조효제사장은 "서로 다른 협상안을 제시하면서 오랜 시간을 밀고 당기는
기존교섭관행은 번거로운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며 "우리회사의 무교섭타결
은 상호신뢰와 협력적 노사관계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마산수출자유지역내 한국태양유전의 이현대노조위원장도 "평소 노사간
신뢰가 어느정도 쌓인데다 노조도 회사의 발전을 위해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와함께 노조가 앞으로 파업등 쟁의행위를 자제하겠다는 "항구적 무쟁의"
선언도 상당수의 사업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항구적 무쟁의선언에 대해서는 노조의 "기본권"까지 포기하면서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다소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분규로 점철돼온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감안할때
무분규선언은 산업현장의 변화를 모색하는 새로운 움직임으로 해석할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무쟁의.무분규선언은 고려제강을 비롯해 동부제강 한보철강 조선무약
상아제약 동양기공등이 이뤄냈다.

지난2월15일 올들어 처음으로 "영원한 무파업"을 선언한 고려제강의 경우
노총과 경총의 중앙단위 임금합의가 불투명한 가운데 노조의 제의로 이뤄진
것이어서 재계와 노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5월18일 항구적 무쟁의를 선언한 조선무약의 조복철노조위원장은 "상호
대립으로 치달을 경우 노사 어느쪽도 이득을 볼수 없다는 사실을 지난
6년간의 노조활동을 통해 알게됐다"며 "제약업계가 당면한 어려운 경영환경
을 극복하기 위해 노조가 앞장서 항구적 무쟁의를 선언했다"고 경위를
밝혔다.

노동교육원의 유장수박사는 "개별노사관계가 전체산업현장의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는 만큼 앞으로 산업평화의 바람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기존의 노사대립구도의 퇴조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조일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