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비해 일부 지방은 재정자립도등에서 마치 대학생과 국민학생이나
다를바 없다. 서울은 1백미터 앞서 나가뛰고 낙후지방은 출발선에서
머뭇거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28일 새벽 허경만 민선전남지사당선자는 취임소감을 발표하는 자리
에서 "당선돼서 기쁘지만 앞으로 지역발전의 편중이 오히려 심화될수도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협조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는 기업으로 치면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와 비슷하다.

경영의 권한과자율이 주어지지만 살림이 잘못될 경우 파산할수도 있다.

지자제를 우리보다 앞서 실시한 일본의 경우에도 지자제는 지역간 빈익빈
부익부를 더욱 가속화시킬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그들도 지자제를 통해 지방균형발전을 꾸준히 모색했지만 동경권의 집중
심화는 전혀 수드러들지 않고 있다.

지역의 균형발전이라는 장미빛 공약과 막연한 기대와는 반대로 지역발전의
편중을 초래할 경우 이는 지자제의 앞날에 그림자를 드릴울수도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은 6.27선거 이전부터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올들어 적극적으로 추진중인 사회간접자본민자유치사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민자사업의 대종을 이루는 건설교통부의 경우를 보자.

10개 대상사업 가운데 동서고속철도(서울-강릉), 경량전철(서울-하남),
수도권신공항고속도로과 공항시설, 경인운하, 인천항 종합여객시설등 무려
6개 사업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정부로선 수도권의 인프라구축이 가장 시급한데다
낙후지방의 경우 정치적인 측면을 고려해서라도 민자사업대상에 대거
포함시키고 싶었지만 투자할 기업이 없을 것이 뻔한데 생색용으로 선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이라고 말했다.

민자유치는 중앙정부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지만 기업의 투자는 오로지
냉엄한 경제원리, 경영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다.

기업이 투자매력을 느낄 만한 대상들을 찾다보니 우선 민자유치사업을
선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지역편중이 나타날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민자유치의 성사여부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대기업들의 장기민자참여계획
을 보면 지역편중은 더욱 극심하다.

"서울,수도권러시" "부산선별투자" "기타지역 추후검토"로 요약될수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의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대상사업을 선정할 필요조차
없다 기업들 스스로 개발청사진을 만들어 제시하는 판국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아예 서울시 전역을 놓고 미래 개발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난지도개발, 여의도개발, 남대문일대 지하개발등등.

서울 위성도시권에 속한 김포군 하남시 고양시등에는 개발안을 들고오는
기업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신도시개발에서부터 첨단공단개발, 관광단지조성등 같은 지역을 놓고
아이디어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앞으로 이들 수도권지자체들은 가만히 앉아서 용역비 한푼 들이지 않고
대기업들이 제시하는 멋진 미래계획을 놓고 선별결정만 하면 될 것이다.

반면 지방의 경우 용역비를 들여 그럴싸한 투자유치계획서를 만들어 서울
까지 올라와서 설명회를 개최하지만 아직 성사된 것이 드물다.

정부의 국토개발전략도 지방으로선 결코 달갑지 않다.

정부는 전국을 동시에 균형발전시키기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과거의개발억제를 사실상 포기했다.

"국경이 없는 경쟁시대엔 국토의 균형발전보다 그나마 여건이 나은 수도권
을 이웃나라의 거점경제권보다 더욱 경쟁력있게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최소한 2000년대 초기까진수도권-부산권-아산권등을 광역거점으로 보고
작년에 이미 이들 3곳을 집중개발키로 결정했다.

민자유치는 물론 정부개발투자도 당분간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게돼
있다.

중앙정부차원에선 이같은 거점개발전략이 바람직하다.

수도권의 특화개발도 국가경쟁력이란 관점에선 이론이 없다.

그러나 지방의 관점에서 보면 반갑지 않다.

이런 상황일수록 지방은 투자유치를 염두에 둔 나머지 독자적인 세제금융
제도개편을 들고 나오는등 중앙정부와 구체적인 정책을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들어 서울 상공회의소등에서 잇따라 개최되는 지방투자유치 설명회에선
"국세의 과감한 지방세화" "그린벨트의 과감한 개발용도로의 전환" "환경
규제의 지역차등화"등 중앙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정책들이 남발
되고 있다.

앞으로 민선단체장들이 현재의 여건에서 지역개발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될 경우 이 보다 더한 요구도 들고나올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일수록 민선단체장의 경영능력, 해당지방공무원들의 의식
변화속도에 따라 지방간에도 앞서는 곳 뒤지는 곳이 뚜렸해질 것으로
보인다.

권업 대구 계명대학 교수는 "당장 기업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지역
이라고 하더라도 지방정부와 지역주민들이 합심해서 기업에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등 수치로 나타나지 않는 투자유치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를테면 어떤 도시가 노사관계에 관한한 전국에서 가장 여건이
좋은 지역이라고 소문만나도 기업유치와 지역경제발전에 앞서 갈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