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9일 국제금융시장개방안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이유로 미국금융
시장 신규 진입국에 대한 최혜국대우를 거부함으로써 세계무역기구(WTO)의
금융개방협상이 실패로 돌아갔다.

WTO 출범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히고 있는 국제금융시장 개방을 위해
이날 제네바에서 계속된 WTO금융서비스 위원회회의에서 미국은 당초 회담
타결의 전망과는 달리 최종 협상안 수용을 거부했다.

협상시한 하루를 앞두고 미국이 30개국 합의안을 거부함에 따라 30일중
(현지시간)으로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사실상 무산됐다.

국제금융시장개방협상이 약 9년간의 오랜 협상에도 불구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지난 86년 9월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의 한 분야로 출발한 금융
시장개방협상은 미국의 협상안 거부로 사실상 결렬된 상태이다.

기술적으로는 협상시한인 30일 자정(한국시각 7월1일 오전 6시)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막판 극적타결이 이루어 질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의 거부입장이 워낙 완강하고 미국의 불만을 사고 있는 일부
국가들도 추가양보안을 내놓을 조짐이 없어 최종시한내에 타결될 가능성은
바늘구멍보다 작다.

일본과 EU 호주등은 일괄협상안을 지지하고는 있지만 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이 반대하는 한 타결은 불가능하다.

금융시장개방협상의 최종목표는 국내외의 모든 금융업체들을 동등하게
취급, 자유경쟁원리를 국제금융시장에 도입하려는 것이다.

이는 외국금융업체들에 대해 국내업체들과 동일한 "내국민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래 금융시장개방문제는 지난 93년말 타결된 UR협상과 함께 종결되도록
돼있었다.

하지만 일부국가들의 시장개방안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미국이 협상시한을
연장할 것을 제안, UR협상참가국들이 금융협상을 95년 6월말까지 18개월간
늦추기로 합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프리 샤퍼미재무차관은 일부 아시아신흥국들의 시장개방안이 기대에
훨씬 못미치고 있어 WTO의 일괄개방안을 받아들일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 일부국가들을 적시하지는 않고 있지만 미관리들은 인도 말레이시아
한국을 주요 불만대상국으로 꼽고 있다.

각국의 시장개방안이 공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불만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은 많은 국가들의 개방폭이 불충분하며 일부 특정국의 경우,
국내시장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과거보다 더 노골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금융협상은 그동안 미일자동차분쟁에 가려 국제사회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아 왔다.

하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은 자동차분쟁보다 훨씬 크다.

금융협상의 실패는 국제통상체제를 뒤흔들어 버릴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출범 6개월밖에 안된 WTO의 최혜국대우(MFN)원칙을 크게 훼손하게
된다.

어느 한 나라가 자신이 시행하고 있는 최선의 교역조건을 모든 교역국에
똑같이 주어야 한다는 MFN원칙의 손상은 마음에 드는 나라에만 선별적으로
좋은 조건을 주겠다는 뜻이다.

이는 MFN원칙과 동일선상에 있는 무차별정신의 훼손과도 직결된다.

이처럼 MFN및 무차별정신이 무너질수 밖에 없는 것은 미국이 앞으로
상대국의 시장개방정도에 맞춰 미국시장을 개방한다는 상호주의를 협상원칙
으로 삼겠다고 천명하고 있어서이다.

협상결렬은 또 WTO의 다자주의정신에도 금이 가게 한다는 점이다.

WTO는 어떤 무역문제에 대해 당사국들끼리 해결하지 말고 관련 이해
당사국들이 모두 참여, 공동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다자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 다자주의에 금이 가게 된것은 미국이 WTO우산에서 이탈, 각국에 대해
일대일의 쌍무협상을 벌여 나갈 계획을 갖고 있는 탓이다.

미국이 쌍무협상으로 방향을 선회할 경우, 개방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한국이나 인도등에게 득될것은 하나도 없다.

다자협상에서는 다른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목소리를 좀더 낼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러나 미국과 일대일로 붙게 되면 힘의 논리를 앞세운 미국에 일방적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금융협상은 WTO출범후 처음으로 이뤄진 다자간 협상이다.

이 첫 다자간협상이 결렬됨으로써 남아있는 통신시장개방협상(내년 4월말
시한)과 해운시장개방협상(내년 6월말시한)에도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