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컴퓨터 관련업체들의 고민중 하나는 사용자들이 제품설명서를
읽지 않는다는데 있다.

하드웨어가 됐건 소프트웨어가 됐건 국내 사용자들은 우선 제품을
보면 먼저 본능적으로 두드리거나 만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사용설명서를 차분하게 읽고 하나 하나 제품의 기능을 익히는 사람이
적다는 얘기다.

PC라는 것이 할수있는 일이 많은 만큼 복잡하기도 해 일반적인 가전제품
다루듯이 대충 만져주면 척척 원하는 일을 해내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설명서를 읽지 않은 사람들은 무턱대고 제조업체의 고객
상담전화번호를 돌리게 마련이다.

컴퓨터 관련업체들에 몰려드는 문의전화와 AS요청중 대부분이 사용미숙
에서 오는 것이며 문제들중 70~80%정도는 해결방법이 설명서에 나와있다는
통계가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컴퓨터 관련업체들의 고객지원담당자들은 문서보다는 직접 사람을
만나거나 목소리를 듣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나라의 접촉문화에
그 탓을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유독 이같은 현상이 컴퓨터와 관련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우리나라 PC및 소프트웨어 보급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

80년대 초반 조립PC가 PC시장을 주도하고 있을 때는 PC에 첨부해 주는
변변한 사용 설명서가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기술자들을 대상으로 쓴듯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설명서는 초보자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는 하드웨어보다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초창기에 대부분 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를 별다른 죄의식없이 불법복제해
썼다.

프로그램은 디스켓에 쉽게 복사가 가능했지만 사용설명서를 복사하는
것은 번거로웠다.

자연히 설명서없이 본능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익히는 태도가 사람들의
몸에 뱄다.

상황은 많이 개선됐다.

설명서는 쉬워졌으며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도 줄어들었다.

그만큼 사용설명서를 읽는시간도 늘어나야 한다.

< 김승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