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삼성 LG 대우 선경 쌍용등 대기업그룹들이 다투어 장기경영비전을
마련중이거나 확정해 가고있다.

재계에 "21세기"를 키워드로 한 중장기 경영비전 수립이 붐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현대그룹이 연말 확정을 목표로 서울대 곽수일교수팀에게 "21세기
경영전략 연구보고서"를 의뢰해 놓고 있는 것을 비롯해 삼성 LG 대우 선경
쌍용등 대기업그룹들이 다투어 장기경영비전을 세우고 있거나 확정한 상태다.

삼성은 지난2월 이건희회장이 주재한 미LA "세계화 전략회의"에서 오는
2001년까지 세계 10위권 기업에 진입한다는 마스터플랜을 확정했다.

목표달성을 위해 그동안 계열사별.국가별.제품별로 세웠던 세계화전략을
소그룹별.지역별.사업별 전략으로 전환키로 했다.

대형화와 복합화를 통한 경쟁력제고에 중점을 둔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LG그룹은 구본무회장의 지시로 회장실 기획팀을 중심으로 "비전 2020"이란
초장기 경영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다.

멀티미디어 생명공학 환경 유통등 "젊은 업종"을 중심으로 그룹 사업구조
를 개편한다는게 골자다.

대우는 종합상사 건설 자동차 기계.조선 전자.통신 금융등 주요 업종별로
해외네트웍 확충등 글로벌화에 초점을 맞춘 "비전 2000"을 짜뒀다.

최근 대기업들이 이처럼 서둘러 마련하고 있는 "비전경영전략"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수성과 도전"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을 에워싸고 있는 "글로벌 무한경쟁시대"는 기존 사업과 시장에
대해선 "수성"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새로운 잠재 사업과 시장에 대한
진출과 개척가능성이라는 "기회"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변규칠LG그룹부회장)는 판단에서다.

변화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처방도 내놓고
있다.

한마디로 기업의 "체형"을 새로 입어야 할 옷에 맞게 뜯어 고치자는
얘기다.

이같은 21세기를 대비한 장기경영계획 수립에는 복합대기업 그룹뿐
전문대기업.중견기업들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조흥은행 교보생명등 금융기관들도 장기경영계획을 마련하는데 적극적이다.

최근 (주)미원이 마련한 "미원 21세기 비전"은 전문기업들의 변신 몸부림
이 더욱 치열해질 것임을 엿보게 한다.

미원이 제시하고 있는 "비전"은 2004년까지 사업다각화를 통해 기업체질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는 내용.

97년까지는 식품,축산,화학등 기존사업의 강화를 통한 신규사업 진출기반
을 마련하고, 2000년까지는 전략사업 안정화와 신규사업확대를 병행하며,
최종적으로 2004년까지는 의약, 유통, 정밀화학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사업에 진출한다는 단계적 지침을 마련해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물론 장기 경영비전이 단순히 매출 확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기술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 세계에서 인정받는 생활가치사업
을 전개한다"(유영학 미원사장)는 명확한 목표의식이 담겨 있다.

"21세기"라는 상징성이외에 기존의 단순한 중장기 경영계획과는 다른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특히 구조개편을 서두르고 있는 자동차전문업체들의 경우도 이런 상황인식
은 비슷하다.

아시아자동차는 2001년까지 "50만대 생산체제와 매출 5조원" 달성을
목표로 한 중장기 경영전략을 최근 확정했다.

아시아자동차가 마련한 경영비전의 핵심은 사업개혁.조직개혁.의식개혁
이라는 3대 경영혁신운동.

특히 사업개혁분야에서는 대형트럭 대형버스 군수산업등 기존사업의
체질 개혁과 함께 RV(다목적차량)사업을 추가했다.

생산차량의 자체 흡수를 위해 관광 운수산업에 신규진출하기로 했으며
승용차의 수입판매등 유통업에도 나설 방침이다.

중견 전문기업들도 21세기 비전을 제시하는데 적극적이다.

신호그룹은 2001년까지 매출목표를 8조원으로 끌어올려 재계 순위 25위권
으로 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신호비전 2000"선포식을 최근 가졌다.

신호는 이 기간중 제지중심의 사업체질을 과감히 탈피, 철강 건설금융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나간다는 방침이다.

"첨단산업의 비율을 그룹 매출액의 60%까지 끌어올려 21세기에 대비하겠다"
(이순국 신호제지회장)는 최고경영자의 말에서도 이같은 의지가 확인된다.

한국화장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4년까지 매출액을 1조6천억원(94년말 현재 1천15억원)으로 확대할
게획이지만 화장품의 비중은 현재의 95%에서 40%이하로 오히려 낮아진다.

나머지는 유통, 금융등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해서 벌충한다는 것이다.

21세기를 겨냥한 기업들의 비전수립 움직임과 관련해 또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최근들어 CI(기업이미지 통합) 개정작업이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LG그룹이 올초 그룹명칭을 구럭키금성에서 개명한 것과 동시에 각종 CI를
단행한 것을 필두로 한화 선경 효성등도 CI개정을 단행했거나 마무리단계
에 있다.

비전에 대한 기업내의 공감대를 다지고 동류의식을 새롭게 하기위해
필요하다면 회사의 "간판"까지도 과감하게 갈아치울 수 있음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기업이 시장이나 기술등 경쟁조건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으로 혁신의 지향점이 먼저 고려되야 한다"(능률협회 컨설팅 송명선
경영시스템 혁신부장)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궤를 같이하는 트렌드이기도
하다.

요컨대 경영혁신에는 분명한 방향타가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단순히 "혁신해 나가자.힘써 노력하자"는 구호로만은 안되며, "어디로"
나갈 것인가를 제시하고 사업의 수행방식이나 사원의 의식을 바꾸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재계에 붐을 이루고 있는 기업들의 장기경영 비전수립은
"21세기 서바이벌 게임"이란 절박한 상황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이의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