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살리기 위한 법정관리 제도가 기업주 회생용 도피처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근 삼도물산 덕산시멘트 유원건설등 도산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잇달아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하루아침에 채권회수가 연기될 처지에 처한 금융기관
등 채권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

파탄에 직면한 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법정관리제도.

법원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 일정기간 채권채무를 동결해주는
이 제도는 부도위기에 놓인 기업들에겐 구명줄이나 다름없다.

빚상환만 5~10년 유예해주면 법정관리기업이 경영정상화에 노력
기사회생해 채권자들에게 밀린 채무도 갚는 정직한 기업도 많다.

물론 법정관리신청으로 몰리기까지 경영부실에 대한 대부분의 과실책임이
경영인이나 주주등 자신들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기득권을 포기하는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회사를 잘못 경영한 책임이 대주주나 임원등
자신들에게 있는데도 법정관리 후에도 소유권을 놓지 않고 다시 자리를
차지하는 사례도 없지않다.

현행 회사정리법 2백21조는 "법정관리 개시의 원인이 이사나 이에
준할자 또는 지배인의 회사재산의 도피.은닉 또는 고의적인 부실경영등
행위에 기인한 경우 이에 관여한 주주및 친족 기타 특수관계 주주는
소유주식 3분의2를 소각하도록"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관리인이나 법원이 이 조항을 적용 기업주 주식을 빼앗은
경우는 아주 드물다.

법적으로 부실경영의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베어링사가 최근 과도한 금융선물거래로 파산위기에 몰려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법정관리인이 제3자인수를 적극추진 이 회사의
경영권이 네덜란드의 ING은행으로 넘어간 경우도 있다.

법정관리 기간중에 경영책임을 지는 법정관리인도 기업주와 관련있는
인물이선임되는 경우도 일부 있다.

그래서 법정관리를 받고 있는 모 기업은 아예 기업주가 회장 직함을
갖고 회사에 출근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88년4월부터 20년 계획으로 법정관리를 받고있는 한진중공업이
최근 거양해운을 인수하자 "큰 회사를 인수할 능력이 있다면 법정관리를
조기종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정관리인이 알아서 회사경영을 잘 해주기 때문에 신경쓸 일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지금 법정관리를 정리계획보다 앞당겨 조기종결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당장 밀린 빚을 갚아야 하는데 뭐 그럴
필요까지 있습니까"

지난 63년부터 시행된 회사정리법을 "유망기업은 살리고 악덕기업주는
쫓아내는" 법률로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런 사람
때문이다.

이밖에 법률명칭을 마치 "정리=파산"을 연상케 하는 회사정리법보다는
회사회생법이 어울린다는 지적도 있다.

<정구학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