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저항선으로 여겨져온 85엔선마저 무너졌다.

미국 달러화는 일본 엔화에 대해 7일 하루전보다 2엔이상 낮은 83엔대로
곤두박질했다.

달러는 언제까지 떨어질까.

달러를 팽개치는 외환시장의 요구사항은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해 일본과 미국은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 환시 동향 ]]]

외환시장의 요구사항은 간단해졌다.

"일본은 무역흑자를 줄이고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줄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달러 하락이 빨라지기 시작한 3월초까지만 해도 달러 약세에 대해서는
멕시코 금융위기, 앨런 그린스펀 연준리(FRB) 의장의 금리인하 시사, 유럽
약세통화국들의 정국불안, 외환투기 만연 등 여러가지 핑계들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미일간 무역불균형과 미국의 재정적자만이 달러 하락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남았다.

멕시코 페소가 달러에 대해 나흘째 오르고 유럽외환시장이 안정되고
있는데도 유독 엔화만 치솟고 있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일본 수출업체들과 생명보험회사를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은 달러가 오르기만
하면 달러를 무더기로 시장에 내놓아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일본 수출업체들은 수출대금으로 달러를 받는대로 엔화로 바꾸고 있다.

일본이 미국에 대해 연간 6백5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내고 있으니 시장에
달러가 넘치는 것은 당연하다.

80년대이후 미국의 재정적자를 메워주었던 일본 기관투자가들도 이제는
순매도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들은 달러 자산에 대한 투자로 매년 손실만 입자 대미투자에 매우
신중해졌다.

미일간 무역불균형과 미국의 거대한 재정적자가 달러 하락의 근본요인으로
전면에 부각됨에 따라 이제는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어정쩡한 협조개입으로는
달러 급락(엔화 급등)을 막을 수 없게 됐다.

지난 5일 단행된 미국 일본 독일 중앙은행들의 외환시장 협조개입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 일본의 대책 ]]]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져온 85엔선이 무너진 7일 일본정부는 긴급각료
회의를 열어 엔화 급등을 저지할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가 끝난뒤 "가능한한 모든 정책수단을 망라한 종합대책을 내주중
내놓겠다"고 밝혔다.

일본정부는 종합대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진 않았지만 재할인율 인하와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협조개입 강화를 비롯해 중소기업 자금지원, 엔고
차익 소비자 환원, 공공사업 조기발주, 추경예산 편성 등으로 알려졌다.

장기적인 대책으로는 규제완화 및 무역흑자 감소방안도 포함될 전망이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이날 85엔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무언가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환투자자들이나 전문가들은 다음주중 발표될 종합대책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일본정부로서도 뾰족한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확실한 단기대책으로 꼽히는 재할인율 인하만 보더라도 그렇다.

일본은행의 마쓰시타총재는 7일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경제상황으로는
재할인율을 내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산업계와 정부측의 금리인하 압력이 강해지고 있어 일본은행이 현재
전후최저치(1.75%)인 재할인율 인하에 동의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재할인율을 0.75% 포인트 이상 내린다 해도 효력이 오래 가진 않을
것이란 말들이 무성하다.

일본내에서는 엔고를 저지하기 위한 장기대책으로 규제완화와 무역흑자
감축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3월말 발표된 규제완화 5개년계획은 국내외에서 미흡하다는 평을
받았다.

보름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일본정부가 획기적인 내용을 추가하리라 기대
하기는 어렵다.

과감한 무역흑자 축소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도 없다.

그동안 일본정부가 취한 행태로 미뤄보아 흑자 감축은 말에 그칠 공산이
크다.

미국 투자은행 살로먼 브라더스의 외환전문가 제프 영은 "최악의 사태는
일본정부의 종합대책이 투자자들에게 실망만 안겨줄 경우"라고 지적하면서
"획기적인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미국의 움직임 ]]]

일본이 근본적인 대책에 소극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일무역불균형은 미국 기업들이 일본시장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탓이며
미국이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하지 않는게 달러 급락(엔화 급등)을 초래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급할게 없다"는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

달러가 엔화에 대해 급락했지만 교역의 3분의1을 차지하는 멕시코.캐나다
화폐에 대해서는 강세를 유지하고 있어 미국으로서는 달러 하락으로 인한
수입인플레를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달러가 엔화에 대해 급락하면 미국 상품의 대일경쟁력이 강화되므로
무역적자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제각료들은 최근 수차례에 걸쳐 미국정부가 "강한 달러"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일에는 달러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 협조개입에도 나섰다.

그러나 외환투자자들은 미국의 외환정책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달러 하락을 방임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달러 급락을 저지하기 위해 FRB가 5월중 단기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얘기
가 나돌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경기선행지수나 고용통계 등 각종 경제지표들이 경기둔화를
알리고 있어 금리인상 가능성은 상당히 약화됐다.

달러 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MIT대의 루디 돈부시 교수는 주간경제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실린
기고에서 "달러 하락을 막을 수단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다"면서 금융정책을
통해 환율을 움직이려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진정 "강한 달러"를 원한다면 외환시장이 요구한 바와 같이 재정
적자를 줄일 확실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상원은 재정적자감축안을 부결시켰다.

게다가 하원은 지난 5일 5년간 1천8백90억달러의 세금을 줄여주는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조세수입이 줄면 재정적자가 커짐은 물론이다.

[[[ 향후 전망 ]]]

엔/달러 환율이 급변하자 선진7개국(G7)은 오는 25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연례회담에서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9일 런던에서 차관급이 참석하는 긴급회담을 갖게 된다.

일본정부는 G7회담에서 선진국들의 협조를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다.

G7회담에서는 시장개입이나 금리협조과 같은 대책도 거론될 것으로 예상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대책으로는 장세를 뒤집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외환시장에
팽배해 있다.

85년의 플라자합의와 같은 인위적인 외환시장 안정책이 모색될 수도 있지만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할 미국이 전혀 그럴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고
독일은 뒷짐만 지고 있다.

G7회담에서조차 확실한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엔 엔/달러 환율이 요동침
은 물론 환율체제 변경을 비롯한 국제통화체제의 구조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브레튼우즈위원회가 제시했다가 뒷전으로 밀린 목표환율대 설정
제안이 다시 거론될 가능성도 있다.

엔/달러 환율의 단기 향방은 다음주중 일본이 내놓을 종합대책에 달려
있다.

외환전문가들은 엔고대책이 미흡하다고 평가되면 80엔선도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의 외환분석가 론 레빈은 "80엔까지 떨어지고 더
이상 떨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지만 80엔마저 무너지면 어둠 뿐이다", "얼마
까지 떨어질지 짐작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