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미 개선한 농산물통관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함에
따라 양국간에 걸려있는 육류유통기한등 통상문제들이 줄줄이 WTO제소대상에
오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에따라 차제에 통상정책의 재점검이 요청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문제가 된 감귤류(자몽)의 통관지연에 대해 3일부터
선통관후검사제도를 도입키로 하고 이를 지난 1일 미국측에 통보했었다.

미키 캔터미무역대표부(USTR)대표도 이를 긍정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WT0제소의 수순을 밟아나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한국의 각종 비관세장벽을 허물어뜨리기위한 파상공세를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감굴류는 4만6천만달러어치 밖에 안되고 이중
통관지연으로 썩은 물량이 15-29%에 불과한데다 그나마 통관개선조치를
취했는데도 강수로 나왔다는 점에서다.

미국이 경제규모로 볼때 미미하지만 WTO제소라는 상징적인 조치를
통해 한국의 까다로운 비관세장벽철거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의 이같은 포석은 USTR이 최근 발표한 외국의 무역장벽보고서에서
이미 예고됐다.

USTR은 한국이 관세등 무역장벽을 크게 개선했지만 수입검사,표준,분류등
각종비관세장벽을 쌓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외무부가 미국이 요청한 신속처리절차에 의한 협의에 불응하겠다고
통보했음에도 미국이 제소절차를 계속 밟기로 답신한 데서도 미국의
불만강도를 짐작할수있다.

물론 미국측에서 볼때 일본이나 중국이 한국보다 통상현안이 더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국을 타킷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다른 의도가 깔려있지 않는냐는 추측도 있다.

새로 출범한 WTO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잡겠다거나, 대북경수로협상과
관련해 한국을 견제하기위한 복선이 깔려있다는 추측들이다.

진의야 어떻든 앞으로 한국의 통상문제가 줄줄이 WTO제소대상에
오를가능성을 배제할수 없게 됐다.

미국은 이미 육류유통기한문제를 WTO로 가져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부가 4월말까지 육류유통기한개선안을 제시한다고 하지만 이번
농산물통관문제에서 보듯 미국이 순순히 받아줄 것으로 낙관하기
어렵다.

이밖에도 의료장비의 검사문제,초콜릿의 표기문제등이 걸려있다.

미국은 "한국이 앞에서는 개선을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이를 지키지
않는다"며 불신하고 있어 앞으로 어떤 문제가 불거질지 모른다.

문제는 정부통상팀의 대응력부족이다.

전문가들은 농산물통관개선조치까지 해놓고 WTO제소라는 칼을 맞은
것은 통상팀들이 미국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고 한국에 대한 불신을
누그러뜨리는 노력도 미진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앞두고 있는 한국에 대한 선진국들의
개방압력은 앞으로도 더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통상라인을 재점검,선진국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면서도 실속을 챙기는
효율적인 정책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광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