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 들어 계속되고 있는 세계항공산업 불황은 한국 항공업계에
희망을 던져주고 있는가"

다소 아이러니컬한 질문 같지만 국내 항공전문가들은 대부분 이에대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1백인승급 중형항공기를 중국과 공동개발할 예정인 삼성항공 대한항공
대우중공업등 국내업계는 세계항공산업의 최근 상황이 한국에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경기침체로 불가피한 선진 항공업체들의 구조조정은 한국에 기술이전 기회
뿐아니라 "틈새시장"까지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서 냉전종식이후 군수기 물량감소로 인해 촉발된 세계 항공산업 불황은
실제로 미국 유럽등 선진 항공업체들을 구조조정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인원감축등 군살빼기는 이미 가시화됐다.

미국의 보잉사는 지난달 24일 5천여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전체 인원(6만여명)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그래서 이날은 보잉의 역사에 "블랙 프라이데이(검은 금요일)"로 기록됐다.

최근 방한한 에드워드 레나르 보잉사수석부사장은 "앞으로도 1만2천여명을
더 짜를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미노드롭사는 지난해 5만3천명에 달하던 인원을 올해 4만2천명선으로
줄였고 록히드사도 앞으로 2-3년 안에 2만여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이에따른 일부 사업의 포기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의 MD(멕도널 더글러스)는 정보기기등 민수부문을 매각했고 GD사도
세스나기와 상용기용 부품 전자부문을 팔았다.

미GE(제너럴 일렉트릭)는 항공우주 부문인 GE에어로스페이스사를 마틴
마리에타사에 넘겼다.

이같은 사업구조 조정은 프랑스의 에어로스페셜사나 독일의 다사사등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직까지는 세계항공산업 불황이 국내업계에 미칠 파장은 크지 않다.

세계경기의 영향을 받을 만큼 한국의 항공기 생산규모가 많지 않아서다.

국내업계는 외국의 기술과 부품을 도입, 전투기를 단순조립하는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도 세계 항공기 시장에 "명함을 내밀"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발탄이 오는 98년까지 중국과 공동개발할 1백인승급 중형항공기이다.

주로 중국등 아시아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이 중형기는 국내 항공업계가
본격적인 민수기 생산에 참여한다는걸 의미한다.

이제부터는 세계항공산업 경기변동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 전문가들의 이와관련 "걱정할게 없다"고 분석한다.

오히려 최근의 경기동향은 한국에 긍정적이란 시각이 많다.

먼저 세계 항공기 산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업재편은 한국의 첨단기술
도입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보잉 MD사등은 일부 사업을 포기하는 한편 개도국과의 공동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는 불황탈출의 비상구로 중국등 아시아시장을 주목하며 이
지역 국가들과 손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삼성항공 관계자는 "한중중형기사업 참여에 미국의 보잉,프랑스의
에어로스페셜등이 양보없는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들이 모두 중국의
잠재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입장에선 첨단기술유치의
호기로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중 공동개발 기종인 1백인승 중형기가 세계항공시장의 "틈새"로
삐져나오고 있는 점도 희망적인 요인이다.

현재 1백50인승급 이상 대형기는 미국의 보잉, MD와 유럽의 에어버스사가
과점하고 있다.

30-70인승 소형기는 ATR(불.이탈리아) SAAB(스웨덴) CASA(스페인)등이
분할 점령하고 있다.

그러나 1백인승급은 이렇다할 주도권자가 없다.

불황의 여파로 새롭게 뛰어들 업체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게다가 한중 1백인승 중형기와 같은 급이어서 최대 라이벌로 지목됐던
미국의 MD-95개발사업은 최근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D-95는 그동안 초기고객 확보에 계속 실패, 사업추진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통상산업부와 업계는 이같은 상황전개로 지금이 중형기 개발의 최적기라고
지적한다.

호황으로 세계유수업체들이 사업확장에 나설때보다는 불황으로 움츠려
있을때 한국과 같은 후발국 입장에선 신규참여 기회가 많다는 것.

이원걸 통산부 항공우주공업과장은 "중형기 개발완료시기를 오는 98년으로
잡은 것은 세계항공시장 경기의 회복시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며 "한국이
1백인승 중형기를 본격 생산할 오는 2000년께는 항공시장이 다시 살아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물론 국내업계의 이같은 장미빛 전망이 현실화 되는데는 어려움도 많다.

항공산업이란게 생각보다 간단한게 아닌 탓이다.

엄청난 초기투자가 불가피한데다 수익전망도 불투명한게 항공산업의 특징
이다.

한국과 같이 기술도 돈도 넉넉치 않은 경우 더욱 그렇다.

더구나 중형기 개발에서도 한국과 중국은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고
<>제3국 기술도입업체 선정이나 <>최종 조립장 위치문제등 넘어야할 산도
많다.

남의 "고통"을 우리의 "희망"으로 연결시키는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