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D램시장에서 한 36%를 차지하고 있지요. 그래서 일각에선
미일 반도체분쟁처럼 한미간 또는 한일간 마찰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통상전문가들은 어떤 품목이건 세계시장 점유율이 33%를 넘으면 항상 통상
마찰 대상이 되게 마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김부회장=그건 기우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반도체를 해외에 파는 것
이상으로 사쓰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작년 국내 반도체시장은 32억달러 규모였는데 이중 국내업체가
공급한 것은 6억달러 뿐이었습니다.

미국이 일본에 요구한 것처럼 한국시장에서 일정량의 미제반도체를 쓰라고
는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는 어떻습니까. 여기서도 일본을 추월할 수
있습니까.

<>김부회장=그에 대해선 노 코멘트입니다.

-지금은 초기라 D램 못지않게 어려움이 따른다면서요.

<>김부회장=(한참 생각하다)우리는 상황이 그 반댑니다. 초기에 너무 좋은
물건이 나와버렸거든요.

아주 쉽게 사업이 이뤄진 거지요. 그래서 임직원들이 긴장을 풀고 자만
하지나 않을까 오히려 걱정입니다.

-너무 좋은 제품이 나왔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김부회장=LCD는 빛의 투사정도를 재는 개구율(화면을 밝게 해주는 정도)
로 품질을 따지는데 일본업체와 비교해도 우리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일본회사중엔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우리 LCD기술을 맞바꾸자고
제의하는 업체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반도체는 그렇고 멀티미디어 사업은 어떻습니까. 멀티미디어사업을 TV
중심으로 몰고가야 할지, PC에 둬야 할 것인지 논란이 일고 있지 않습니까.

<>김부회장=현재는 TV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PC쪽도
무시할 수 없지요.

삼성이 그동안 엄청난 적자를 보면서도 PC비즈니스를 끌고 온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PC가 중심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PC를 쓰느냐갸 중요
합니다.

PC의 보급과 직결된 문제지요. 이 일은 치열한 가격경쟁등 가전사업에
경험이 있는 기업이 단연 유리하다고 봅니다.

-멀티미디어사업을 위해선 통신분야가 꽤나 중요하다던데요.

<>김부회장=그렇습니다. 통신은 멀티미디어의 신경망과 같거든요.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통신사업을 제한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입니다.

외국업체엔 다 개방해 놓고 국내기업들엔 안된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앞으로 통신서비스사업에도 진출하겠다는 말씀같은데요. 데이콤 주식지분
을 늘리거나 제3이동통신이 생긴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김부회장=물론이지요. 제한을 않는다면 참여할 것입니다. 비즈니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통신서비스 사업에 들어갈 겁니다.

그렇지만 정부가 제한하는데 편법으로 진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전분야는 어떻습니까. 이젠 재미좀 보십니까.

<>김부회장=반도체만은 못하지만 여기서도 꽤 재미를 보는 편입니다.
매출도 늘고 이익도 증가하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성가를 높이고 있고.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나타나고 있다고나 할까요.

-세계 일류를 겨냥한 "월드베스트" 제품도 기대만큼 성과를 내고 있나요.

<>김부회장=세계시장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봅니다. 예컨대
얼마전에 개발한 더블와이드TV 같은 건 정말 "월드 베스트"라는 평을 듣고
있지요.

그러나 제 기준으론 아직 불만이 없는 게 아닙니다. 제품 개선은 한도 끝도
없는 것이니까요.

-삼성전자는 해외기업과 제휴 또는 인수등 세계화전략에도 급피치를 올리고
있더군요.

<>김부회장=물론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해외사업엔 원칙이 있습니다.
아직 축적이 안돼있는 기술분야에 새로 뛰어드는 것보다 남이 이룩한 걸
이용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경우에만 해외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일본 앰프회사인 럭스만을 사들인 것이나, 최근 컴퓨터회사인 미국
AST사 지분을 인수한 게 다 그런 배경에서였습니다.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신규진출)보다 그려진 그림에 덧칠(M&A)을
하는게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삼성식으로 경영하려면 파생되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습니다.

<>김부회장=국제화.세계화의 전제는 현지화, 이른바 글로컬리제이션
(glocalization)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수한 외국기업들에는 기존의 경영진등 인력들이 그대로 회사를
끌고 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직접 경영을 장악할 생각을 않는다는 얘기지요.

-그러나 독일에서 인수한 기업을 경영하는 과정에서 노조문제가 발생한
것은 삼성식 경영을 했기 때문 아닙니까.

<>김부회장=독일회사건은 노사화합을 위해 현지 경영진과 근로자들에게
조언을 했던 것인데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조금 오해가 생겼던 것일
뿐이고요.

-그룹 신규사업으로 확정된 자동차사업에 삼성전자가 많은 돈을 대줄
것이라는 게 일반의 전망입니다.

<>김부회장=글쎄요. 우리가 일부 출자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우리 사업의 우선 순위를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전자 자체의 사업확장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지요. 자동차 전장사업만 해도
새로 개척해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카 스테레오라든가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라든가... 그런걸 포괄해서
말한다면 삼성자동차에 많이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최고경영인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경영스타일에 대해선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김부회장=크게 두가지예요. 의도적으로 임직원들을 이끌고 나갈 때가
있고, 반대로 직접 앞장을 세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업 초기단계에선 제가 앞장을 섭니다. 그 밖에는 자율에 맡겨버립니다.
결재할 때 원칙이 있는데 "이러이렇게 하겠습니다"는 서류만 들고 오게
하고, "어떻게 할까요"고 묻는 서류는 퇴짜를 놓아 버린다는 겁니다.

-부회장골프를 주변에선 "반도체골프"라고 한다던데요. 에이즈.오비.벙커.
올림픽.사담 후세인등 점수와 무관한 게임을 다섯가지나 개발해 즐기시고,
스코어도 직접 적어 넣으신다고요.

"경영은 골프와 마찬가지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떻습니까. 잘 될때는 뭔가
되는가 싶다가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게 회사경영과 골프라고 하지요.

<>김부회장=글쎄, 저는 골프도 경영도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골프는 점수를 따지지 않고 치면 되는거고, 경영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
하지요.

저는 직장생활을 처음 TBC(동양방송)에서 시작했는데 한 4년간 비디오맨을
했습니다.

열개가 넘는 TV를 한꺼번에 보면서 잘못된 화면을 잡아내는게 일과였지요.
그래서 비정상적인 것을 잡아내는 데는 일가견을 갖고 있습니다.

공장사람들이 자기들은 평범하게 지나치는 것을 제가 딱부러지게 잡아
낸다며 신기해하고 있을 정도지요.

그런 안목이 제가 오늘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회장께는 운도 따랐던 셈이네요.

<>김부회장=운이란 건 실력있고 노력하는 사람한테나 찾아오는 것입니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은 역시 실력이 있어야지요.

< 정리 = 이학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