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수(42)가 몰락하고 있다.

무관으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고 올해성적은 5승6패.승률도 나쁘지만
내용은 더 나쁘다.

패왕전 결승에서 유창혁에 패해 도전기 진출이 좌절되고 왕위전에서는
조훈현에 덜미를 잡혔다.

기성전에서는 김성룡 삼단에 져 예선탈락했고 자신의 고향이랄 수 있는
명인전에서도 새까만 후배인 김준영 이단에게 패해 예선1회전에서 탈락,
충격을 줬다.

내심 타이틀복귀무대로 점찍었던 기왕전 본선에서는 조훈현을 이겼지만
유창혁의 벽을 넘지 못해 막판2연패로 도전권을 놓쳤다.

현재 본선에 올라있는 기전은 배달왕기전과 박카스배 정도다.

서구단의 패배는 더 이상 화제가 못된다.

반상의 한귀를 굳건히 지켜오던 서봉수 구단이 4인방의 대오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양재호 구단이나 최규병 칠단을 4인방에 넣자는 말도 들린다.

19세에 당시 최고수 김인.조남철을 꺽고 명인에 화려하게 등극,늘
주연의 자리를 지켰던 서봉수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서봉수 구단이 마지막으로 주목을 받은때가 1천승을 기록하던 지난해
11월.그 때도 997승에서 내리7연패,998승에서 2연패,999승에서 다시
4연패를 당하는 우여곡절 끝에 기념비적인 1천승을 달성했다.

서봉수의 쇠락은 93년 응창기배 세계대회 우승이후 뚜렷해졌다.

큰대회 우승으로 정신력이 해이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슬럼프때마다 특유의 생명력으로 되살아났다.

80년 무관전락시 기상천외의 백번흉내바둑으로 돌아왔고, 84년 무관때도
60일간의 재충전여행으로 타이틀에 복귀했다.

90년 "뜨는 해" 이창호에 일방적으로 밀릴때도 철저한 분석으로
동양증권배에서 예상을 뒤엎고 우승했다.

이번 슬럼프도 잠시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지만 벌써 2년여에 이르고
있다.

71년 명인에 오른지 22년만인 93년에 무관이 된 서봉수. 라이벌
조훈현도 73년 최고위 쟁취후 22년만인 95년 무관이 됐다.

그러나 음지와 양지의 명암은 확연하다.

조훈현은 국내부진을 세계대회선전으로 만회하고 있지만 서봉수는
그렇지 못하다.

지난 2월에 끝난 진로배 시상식에서도 서구단은 멋적은 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우승상금을 받기는 하지만 자신은 1승도 못올렸기 때문이다.

서구단의 작년 3개 세계대회성적은 1승3패,대부분 1회전 탈락이었다.

월간 "바둑"의 정용진 편집장은 "바둑실력이 갑자기 줄리는 없지만
아주 섬세한 올과 같아서 한번 풀리면 여간해서는 회복이 힘들다"며
"최고조의 긴장,호흡이 유지되야 하는것이 바둑"이라고 말한다.

정상의 반열에서 한번 비켜난 기사의 컴백이 쉽지않다는 얘기.

바둑은 승부다. 응씨배에서 "승부사"서봉수가 "미학"의 오다케 히데오
구단을 꺽었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심장으로 싸운다는 잡초같은 생명력의 순국산프로 서봉수. "남자는
40세까지가 인생이고 그 뒤는 리바이벌이다" 서봉수 구단이 우스개로
자주하는 말이다.

팬들은 리바이벌을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