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경제의 불안은 언제든지 국제금융시장을 강타할 수 있는 "시한폭탄"
이다.

지난해말부터 시작된 멕시코 금융위기는 미국 달러화의 대외가치를 떨어
뜨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지난해 12월20일 평가절하후 멕시코 페소화 가치가 폭락, 미국경제가 타격
을 입게되자 투자자들 사이에 달러 기피현상이 확산되면서 달러는 독일
마르크화와 일본 엔화에 대해 급격히 떨어졌다.

또 멕시코와 유사한 신흥시장에서는 핫머니가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페소화.달러화의 폭락세는 최근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남미경제가 불안해져 국제금융시장이 다시 홍역을 치를 가능성은
아직도 남아있다.

지난주 중남미경제는 벼랑까지 몰리다가 극적으로 구조됐다.

주초부터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중남미 3대국에서 통화가치와 주가
가 폭락하고 금리가 폭등하다가 10일 각국이 비상대책을 내놓으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멕시코 페소화는 지난주 미달러에 대해 닷새째 사상최저치를 경신했으며
9일엔 달러당 7.70페소(종가 7.45페소)까지 폭락했다.

페소는 이날 저녁 정부가 증세, 공공요금 인상, 정부지출 삭감 등을 골자로
하는 극단적인 비상경제대책을 발표한데 힘입어 다음날 6.30페소로 반등
했다.

그러나 "시한폭탄"의 뇌관이 제거됐다고 믿는 이는 없다.

국민들이 "고통분담"에 기꺼이 동참하기 어려운데다 경기가 급격히 침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2%,물가상승률 47%로 잡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민간경제계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목표라고 보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지난주 "제2의 멕시코사태"가 터질 뻔했다.

6일 정부가 레알화를 소폭 평가절하하자 증시에서 사흘동안 15억달러의
자금이 이탈, 주가(상파울루)가 28.4% 폭락했으며 중앙은행은 레알화 가치를
지키기 위해 9일 32차례나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했다.

급기야 브라질정부는 10일 해외자금 투자유인책을 발표, 시장을 안정
시켰다.

브라질경제의 문제는 레알화의 과대평가로 무역수지가 악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브라질은 지난해 11월 무역수지가 8년만에 적자로 돌아선뒤 4개월째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레알화의 가치를 떠받침에 따라 수출이 위축되고 수입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소폭이나마 레알화 평가절하를 단행한 것은 이런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레알화를 적정수준으로 평가절하하는 과정에 멕시코처럼 외국자금이
이탈, 주가가 폭락하고 금리가 폭등할 수 있음이 지난주 확인됐다.

멕시코에 이어 브라질이 소폭이나마 평가절하를 단행하자 불똥은
아르헨티나로 튀었다.

아르헨티나도 평가절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주가가 4년래
최저수준으로 떨어졌고 콜금리는 50%에서 70%로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 페소화가 40% 가량 과대평가됐다고 말한다.

아르헨티나정부는 즉각 평가절하설을 부인했지만 투자자들은 언젠가는
평가절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3국은 다같이 80년대부터 환율안정을
통해 경제를 안정시키는 "이단적인 경제안정책"을 펴왔다.

이들은 환율을 고정시키거나(아르헨티나) 좁은 변동폭에서 움직이도록
(멕시코.브라질) 제한함으로써 금리와 물가를 안정시키고 외자를 끌어
들였다.

그러나 이같은 경제안정책은 마침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화폐가치가 과대평가되는 바람에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일시에 절하 압력이
가해지면서 해외자금이 대거 빠져나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80년대초 중남미의 모라토리엄(부채상환유예) 선언으로 고통을 당했던
선진국들은 중남미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중남미경제의 "시한폭탄"에서 뇌관을 제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폭탄"이 터지면 중남미경제는 물론 국제금융시장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