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최근 해외 발전소 사업에 팔을 걷어 부쳤다.

지난해 중국 광동원전 보수정비 용역을 따내 해외진출의 테이프를 끊은
이후 필리핀 베트남등 동남아 진출을 가시화하고 있다.

사업내용도 기존 발전소의 정비용역에서 신규 발전소 건설.가동으로까지
확대할 움직임이다.

한전이 이처럼 "밖으로의 전력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30여년간 축적된
전력기술을 개도국에 이전한다는 "명분"이외에 "실속"도 있어서 이다.

중국과 동남아는 경제개발과 함께 90년대 들어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술과 자본이 여의치 않아 발전소 건설을 대부분 외국에 의존
하고 있는 이들은 무한한 잠재시장인 셈이다.

게다가 전력사업은 대규모 투지인 만큼 수익도 짭짤하다.

발전소 건설등은 현지정부가 보증하는 사업이어서 어떤 해외투자보다도
"위험부담"이 적은 사업이기도 하다.

한전의 해외전력사업은 지난해가 원년이다.

시발탄은 중국 광동원전 정비기술 용역수주.

한전은 작년 1월부터 2년간 광동원전의 정비 긴급복구등 각종 기술지원을
전담한다는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한전은 기술진 9명을 현지에 파견해 놓고 있다.

이 용역의 계약금은 총4백20만달러이다.

이와함께 지난해 10월부터는 11만달러를 받고 광동원전의 정비요원들을
국내에서 연수교육 시키고 있기도 하다.

정비용역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 노후 발전소 보수.재가동사업이다.

필리핀전력공사가 발주한 말라야 화력발전소(65만Kw급) 복구.운영사업권을
지난 7일 따낸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전은 1천3백억원을 투자해 말라야 화전을 복구하고 보수기간 4년을
포함, 앞으로 15년간 직접 운영해 전기요금으로 투자비를 회수하게 된다.

이 사업으로 한전은 총7천3백25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필리핀에서는 이전에도 국내에서 용도폐기된 왕십리와 부평 내연발전소의
4천3백Kw급 각 6기씩을 현지 에미타발전소에 이전, 재가동하는 사업을 진행
하고 있다.

이밖에 현재 실시중인 베트남의 붕타우시 전력손실 감소대책 용역도
동남아 전력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게 한전의 자체 평가이다.

해외전력사업의 알맹이는 역시 발전소 건설.운영이다.

지금까지 크게 돈벌이는 안되도 정비용역이나 보수가동사업에 참여했던
것도 모두 이를 위한 "터 닦기"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물론 주요 타깃 대상국은 중국.

그것도 원전 건설이다.

중국은 오는 2010년까지 총20-30기의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다.

원전 1기(1백만Kw급 기준)당 건설비가 20억달러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시장인 셈이다.

이 시장을 놓고 일본 대만 홍콩등 경쟁국들도 군침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의 중국 전력시장 진출전망이 밝다는게 한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국은 다른 어떤 아시아 국가들보다도 원전 건설이나 운영등에서 인정을
받고 있어서다.

미국의 유력한 원자력시사지인 "뉴클레오닉 위크지"가 지난해 원전 이용률
1위로 영광1호기를 선정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영광1호기는 이용률이 1백3%로 세계 4백15기 원전중 최고를 기록했다.

한전은 지난93년에도 월성1호기(이용률 100.8%)로 1위를 차지 했었다.

어쨌든 중국진출에 희망을 가질 만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건
사실이다.

지난 11일 중국핵총공사와 한전이 원전 예비타당성조사에 합의한 것이
그렇다.

이 조사의 기본 모델은 "한국형 경수로"인 울진3,4호기이다.

더구나 황병태 주중대사는 최근 "중국이 앞으로 건설한 원전의 모델을
한국형으로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지만 중국투자 자체가 불확실성이 많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또 덩어리가 큰 만큼 해외전력사업은 만의 하나의 투자 리스크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현지 정부가 보증을 선다해도 정치적인 이유로 사업이 꼬일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정치상황이 아직은 불투명한 중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

대부분 해외차입으로 진행하고 있는 해외전력사업의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
해 얼마나 "안전한" 투자를 하느냐가 관건이란 지적이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