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을 구가했다던 자동차업계의 지난해 "성적표"가 예상밖의 적자 투성이로
나오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지금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6백96억원의 당기순손실을
적어넣은 결산보고서를 인쇄하고 있다.

오는27일이면 주주들에게 80년대초 "봉고신화"로 다시 일어선 이후론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고 보고해야한다.

쌍룡자동차는 주총이 3월17일이어서 아직 결산이 다끝나지는 않았지만
적자폭은 93년보다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상은 약 7백억원.아시아자동차는 다행히 적자는 아니다.

하지만 매출이 크게 늘었는데도 흑자폭은 오히려 81억원에서 72억원으로
줄어 주주들의 질책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비상장업체인 대우자동차도 적자규모가 93년 8백47억원에서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아 고민이다.

다만 업계 선두인 현대자동차만이 1천3백67억원으로 흑자규모를 늘려
업계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누구든 자동차업계가 지난해 장사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난해 자동차업계의 판매댓수는 2백30만대.

93년보다 10.6% 늘어났다.

내수가 1백56만대로 8.3% 늘었으며 수출은 74만대로 15.6%나 증가했다.

그런데 결산이 적자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기아자동차는 93년만 해도 1백86억원의 흑자를 올렸던 기업이다.

지난해에도 매출이 4조7천3백7억원으로 93년에 비해 15.0%나 늘었다.

매출 증가속에 7백억원이라는 대규모의 적자를 본 이유는 무엇일까.

결산보고서는 그이유를 내수시장의 부진,판매관리비 급증,금융비용
부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선 매출총이익이 6천6백80억원으로 14.4% 증가에 그친 반면 판매관리비
5천5백억원으로 93년에 비해 무려 30%나 증가했다.

물론 인건비상승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에따라 영업이익이 93년에 비해 26.8%나 줄어든 1천1백80억원에 그쳤다.

여기에 지급이자 기부금등 영업외비용이 93년보다 26.3%가 증가했다.

93년 1백80억원이었던 경상이익은 7백9억원의 손실로,1백86억원의
당기순이익은 6백95억6천만원의 손실로 반전됐다.

아시아자동차는 매출액이 1조2백39억원에서 1조3천5백34억원으로 무려
32.2%나 늘었다.

반면 흑자규모는 오히려 81억원에서 72억원으로 축소됐다.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등을 수탁생산하면서 매출증대효과는 있었던 반면
흑자축소 원인은 기아자동차와 마찬가지이다.

영업외비용이 1천4백17억원에서 1천8백98억원으로 크게 늘어나면서
경상이익이 81억원에서 4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1만원어치를 팔아 고작 29원을 남겼다는 얘기다.

현대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의 부진은 국내자동차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다.

현대도 사실 지난해 "보물덩어리"인 쏘나타 가 없었다면 흑자를 냈다해도
그규모는 93년보다 작았을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자동차업계 고민은 노사분규에 따른 생산차질과 인건비 상승.

지난해도 현대와 대우만 쟁의가 없었다.

기아는 6-7월 28일간의 생산이 차질을 빚었다.

당초 생산목표는 78만대였으나 62만3천대에 그쳤다.

그런 가운데 인건비는 오를대로 올랐다.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과감한 투자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모든 업체들이 1백만대 생산체제 구축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고금리로 국제경쟁력을 키워야하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기아는 지난해를 바닥으로 보고 있다.

프라이드로 승용차시장에 뛰어든지 불과 8년만인 올해 승용차의 풀 라인 업
체제와 함께 1백만대 체제를 갖추게 된다.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특히 지난2-3년간은 관리직사원의 임금을 동결하면서까지 아산만공장의
마무리 투자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내일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던 것이다.

"자식을 서울대에 보냈으니 올해부터는 돈을 벌어올 것"이라고 자신있어
하는 기아의 한임원의 말에서 기아의 지난해 결손은 도약을 위한 움츠림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어느 업체고 지난8년간 자동차값을 올리지 못했다.

물가를 잡는데 공산품,그것도 고가의 내구소비재 가격을 묶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정부의 판단에서다.

적자로 멍든 자동차산업 국제경쟁력이 정부의 물가논리에 발목 잡히고 있는
셈이다.

지난21일 자동차업계 사장단과의 조찬간담회에서 박운서통상산업부차관은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올해도 물가 안정을 위해 자동차업계가 아무리 새모델을 내놨다해도
가격은 올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김정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