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배달왕전 우승 20세 이창호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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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국정지표로까지 등장했다.
일부 분야에서 세계정상에 올라선 한국인이 여럿 등장했지만 바둑만큼
확실한 세계화를 이룬 분야도 드물것 같다.
프로바둑기사 이창호칠단은 75년생으로 아직 만20세가 안됐지만
세계의 모든 기사들이 두려워할 정도의 기재로 우뚝 솟아있다.
"세계바둑황제"라는 조훈현구단(42)에 압도적 우세를 보이고 있으니
그가 바로 세계1인자라고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이칠단은 11세에 입단,14세에 최연소로 바둑왕전 타이틀을 땄고 17세때
세계대회인 동양증권배를 석권했다.
지난해에는 16개인 국내기전을 모두 한번씩 정복하는"바둑의
사이클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칠단을 공익근무요원으로 확정한 23일 한국경제신문과
한국PC통신이 공동주최한 제2기 한국이동통신배 배달왕기전 시상식장
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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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양정진 < 체육부장 > ]]]
"국내기전 전광왕이 된다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전 기전에 나간다는
것도 문제려니와 나가더라도 다 이긴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국내 16개 기전중 현재 11개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어 나머지 5개
타이틀도 휩쓸 가능성이 많지 않으냐는것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반집승부까지 정확히 예측하는 그의 계산력앞에 조구단이 번번이
나가 떨어지자 바둑 관계자들이 조심스럽게 이창호의 타이틀 독식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는데도 정작 그는 고개를 젓는다.
"최후의 반집승부를 미리 계산에 넣고 대국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기사들의 칭찬일 것이다. 대국 후반에는 수읽기보다는 실수를 덜
하는 쪽이 승산이 있고,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실수를 적게 하다보니
반집승리가 나오는 것이다"
대국상황에 따라 다르나 대개 20~30수 앞을 내다본다는 그의 말로
미루어 겸손한 표현으로 들린다.
고향 전주에서 바둑수업을 하던 그는 만 9세였던 1984년 서울로
올라와 조구단의 내제자가 된다.
바둑에 본격 전념하게 된 것이다.
후생가외라고 했던가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스승과 제자는 약속이라도 한듯 기전 타이틀을 과점하다시피 했고
최근까지 도전기마다 스승과 제자의 피할수없는 대국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8일 끝난 제2기 이동통신배 배달왕기전 결승 2,3국에서는 누가
보더라도 스승이 유리했던 상황을 막판에 제자가 뒤집어 잇따라
반집승부의 명국을 이끌었다.
관전자들은 이창호의 신출귀몰한 끝내기를 두고 "마치 귀신에게
홀린것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배달왕전 2국은 선생님이나 나나 어려운 바둑으로 미세했다. 3국에서는
내가 중반까지 열세였는데 선생님이 너무 낙관한 나머지 수읽기에서
착각을 하고,끝내기 단계에서 한걸음 후퇴하는등 두 번의 실수를 해
그렇게 됐다"
그는 한사코 "신의 경지"라는 그의 끝내기,계산력을 뽐내려 하지 않고
상대의 실수로 돌린다.
그래도 조구단이 제일 힘든 상대라고 평가한 그는 지난해말 시작된
스승과의 5개타이틀 도전25번기에서 11승4패를 기록중이다.
그는 첫 사제 결승대결이었던 90년 최고위전에서 스승을 꺾고 타이틀을
땄을때 무척 기뻐했지만 지금은 이겨도 별 느낌이 없을 정도로 무감각
해졌다고. 그러나 졌을때는 "매우 괴롭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겼을때 기뻤다고는 했으나 승부차원의 속세적 기쁨보다는 가르쳐준
스승에 대한 "실력보답"측면에서 기뻐하지 않았나 하는 행간을 읽을수
있다.
천하의 이창호이지만 지금까지 불계패한 경우도 적지않았다.
그는 "변화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을때 불계패를 자인한다.
반면상으로 1~2집 불리하고,덤까지 쳐서 7~8집 뒤졌을때 불계패를
시인한다"고 했다.
기사들은 보통 불계패를 시인할때 독특한 제스처를 쓰곤 하는데
이창호는 돌을 놓으며 "졌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인다고.
한국남자 나이 20세면 병역의무를 생각해야 할 때. 지난해 논란끝에
공익근무요원 복무가 확정됐지만 구체적 결정이 나온 것은 23일이다.
바둑기사로는 첫 대상자가 된 그는 3월27일부터 98년3월26일까지
3년동안 한국기원 소속기사로서 바둑에만 전념해야 한다.
"지난해 신경을 꽤 썼으나 병역문제로 내 바둑이 달라진 것은 없다.
만약 군에 가게 됐으면 복무기간 힘들었으리라는 생각은 했으나 입대
전까지는 열심히 둘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바둑과 병역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느낌이다"
좀 의외의 답변이었다.
기자가 이해를 못했는지, 아니면 병역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그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아리송한 부분이다.
여하튼 그는 지난해말 진로배 세계최강전(일본)에서 중국 일본의
대표기사를 상대로 4연승을 거두어 오랜만에 국제대회에서 체면을
세우기도 했다.
이창호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체력도 있어 그의 단명을 예상하는
기사는 단 한명도 없지만 요즈음 신예기사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
사실도 부인할수 없다.
그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른바 "신4인방"으로 일컬어지는 윤성현오단 윤현석삼단 최명훈사단
양건삼단외에 김영삼삼단 김성룡삼단 목진석초단등이 정상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신예기사들의 활약상이 예전보다 많이 돋보인다. 10명정도를 꼽을수
있는데,그중 1~2명이 뚜렷하게 앞서있는 상황이라기보다는 그들 모두가
만만치않은 다크호스라고 보고 싶다"
국제기전에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을 듣는 그는 일본 중국기사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주문에 망설였으나 "중국의 윙평 마효춘구단과의
대국때는 다른 기사들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아마 그들이 강해서 그런것같다.
일본은 정상급기사들이 10여명이나 되고 그들과 다 대국하지 못해
평가하기 곤란하다.
동양증권배에서 조치훈구단에게 3연승을 거두었으나 그때는 조구단이
평소 기풍(실리 바둑)과는 달리 나와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이상하다"
말수가 적고 좀처럼 표정이 없는 이창호는 한국바둑의 위상과 미래에
대해서는 비교적 오랫동안 얘기했다.
한국바둑이 현재 각종 세계대회를 제패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 상태를
유지하려면 저변이 두터워져야 하며 정상급 기사들도 더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는 어른스런 말도 덧붙였다.
일본은 기사층이 두텁기 때문에 언제라도 우리를 그는 일본바둑은
역사가 깊은만큼 포석.이론이 뛰어나고 끝내기등에서도 정석위주로
두는 것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또 원래 전투위주였던 중국바둑도 최근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후반에
끝내기를 착실히 하는등 기교를 중시하는 쪽으로 기풍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한국이 싸움.전투바둑을 즐긴다고 했다.
아마추어들이 선호하고 있는 다케미야 마사키의 우주류 바둑은 보기에는
좋으나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고 지적한다.
"어려운 바둑을 자기 스타일에 맞게 개조한 것이 가히 감탄할만하다.
우리 기사들은 우주(중앙)쪽은 워낙 넓어 집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창호도 요즘 포석과정에서 정석에도 없는 신수를 구사하곤 한다.
"새로운 정석" "이창호류 바둑"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주인공답게
창조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는 까닭일까.
프로기사 이창호이지만 지도다면기등을 통해 6~7점을 접어주고
아주 가끔 아마추어와 대국을 한다.
전 한국기원이사장인 장재식 의원(민주.아마칠단)과 선에 덤을 주고
두는데 10집정도 이기기도 했다.
"아마추어라도 아주 장고는 아니더라도 급수에 맞는 수읽기는 해야
바둑이 는다. 아마추어들은 대국중 머리보다는 손이 먼저 나가는 경우가
많아 실수를 하고 덜컥수를 둔다. 적어도 복기가 가능할 정도의 신중함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잘잘못을 따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전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대국이 없는 날에도 한국기원이나 충암연구실에 나가 바둑공부를 한다는
그이지만 "다시 태어나도 바둑을 하겠느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젓는다.
"한때는 그렇게도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바둑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범부의 길을 걷고 싶어서이다. 바둑은 끝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다시 태어나서 바둑을 한다해도 종착역이 없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삶을 경험하고 싶다"
그는 건방진 것 같지만 바둑속에서 인생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고 한다.
초반 중반을 거치면서 종반으로 내닫는 바둑을 셈하면서 인생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별명도 여럿 가지고 있다.
천재기사 신산자 돌부처 외계인,80세 노인,전대고수의 환생,기다림의
달인,끝내기의 귀재,바둑5000년사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 등등.
어떤 것이 가장 자신을 잘 표현한 것인가 골라보라니 "기다림의
달인"쪽을 택하겠단다.
기다림 인내 신중함 두터움 등은 바로 그의 바둑의 특징이 아닌가.
기다림에 익숙해 있어서인가.
고향갈때나 서울에서 움직일때도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지난해 언젠가는 지하철에 막 타는 순간 누군가 "이창호다"라고
큰소리치는 바람에 쑥스러워 혼났다고.
흔한 말로 스타인데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쑥스러움을 타는 것을
성격탓으로 돌리는 그는 마찬가지 이유로 아직까지 이렇다할 여자친구
한사람 없다.
도무지 말을 건넬 용기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자친구로 인해 바둑이 영향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며 기회가 있으면
사귀어 좀 즐겁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양사람들에게도 바둑을 널리 보급하려면 제한시간을 3시간
정도로 단축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했다.
바둑을 제대로 두려면 3시간이 짧지만 세계화의 첨병으로서 바둑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할것이라고 했다.
< 정리=김경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4일자).
"세계화"가 국정지표로까지 등장했다.
일부 분야에서 세계정상에 올라선 한국인이 여럿 등장했지만 바둑만큼
확실한 세계화를 이룬 분야도 드물것 같다.
프로바둑기사 이창호칠단은 75년생으로 아직 만20세가 안됐지만
세계의 모든 기사들이 두려워할 정도의 기재로 우뚝 솟아있다.
"세계바둑황제"라는 조훈현구단(42)에 압도적 우세를 보이고 있으니
그가 바로 세계1인자라고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이칠단은 11세에 입단,14세에 최연소로 바둑왕전 타이틀을 땄고 17세때
세계대회인 동양증권배를 석권했다.
지난해에는 16개인 국내기전을 모두 한번씩 정복하는"바둑의
사이클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부가 이칠단을 공익근무요원으로 확정한 23일 한국경제신문과
한국PC통신이 공동주최한 제2기 한국이동통신배 배달왕기전 시상식장
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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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양정진 < 체육부장 > ]]]
"국내기전 전광왕이 된다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전 기전에 나간다는
것도 문제려니와 나가더라도 다 이긴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국내 16개 기전중 현재 11개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어 나머지 5개
타이틀도 휩쓸 가능성이 많지 않으냐는것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반집승부까지 정확히 예측하는 그의 계산력앞에 조구단이 번번이
나가 떨어지자 바둑 관계자들이 조심스럽게 이창호의 타이틀 독식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는데도 정작 그는 고개를 젓는다.
"최후의 반집승부를 미리 계산에 넣고 대국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기사들의 칭찬일 것이다. 대국 후반에는 수읽기보다는 실수를 덜
하는 쪽이 승산이 있고,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실수를 적게 하다보니
반집승리가 나오는 것이다"
대국상황에 따라 다르나 대개 20~30수 앞을 내다본다는 그의 말로
미루어 겸손한 표현으로 들린다.
고향 전주에서 바둑수업을 하던 그는 만 9세였던 1984년 서울로
올라와 조구단의 내제자가 된다.
바둑에 본격 전념하게 된 것이다.
후생가외라고 했던가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스승과 제자는 약속이라도 한듯 기전 타이틀을 과점하다시피 했고
최근까지 도전기마다 스승과 제자의 피할수없는 대국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8일 끝난 제2기 이동통신배 배달왕기전 결승 2,3국에서는 누가
보더라도 스승이 유리했던 상황을 막판에 제자가 뒤집어 잇따라
반집승부의 명국을 이끌었다.
관전자들은 이창호의 신출귀몰한 끝내기를 두고 "마치 귀신에게
홀린것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배달왕전 2국은 선생님이나 나나 어려운 바둑으로 미세했다. 3국에서는
내가 중반까지 열세였는데 선생님이 너무 낙관한 나머지 수읽기에서
착각을 하고,끝내기 단계에서 한걸음 후퇴하는등 두 번의 실수를 해
그렇게 됐다"
그는 한사코 "신의 경지"라는 그의 끝내기,계산력을 뽐내려 하지 않고
상대의 실수로 돌린다.
그래도 조구단이 제일 힘든 상대라고 평가한 그는 지난해말 시작된
스승과의 5개타이틀 도전25번기에서 11승4패를 기록중이다.
그는 첫 사제 결승대결이었던 90년 최고위전에서 스승을 꺾고 타이틀을
땄을때 무척 기뻐했지만 지금은 이겨도 별 느낌이 없을 정도로 무감각
해졌다고. 그러나 졌을때는 "매우 괴롭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이겼을때 기뻤다고는 했으나 승부차원의 속세적 기쁨보다는 가르쳐준
스승에 대한 "실력보답"측면에서 기뻐하지 않았나 하는 행간을 읽을수
있다.
천하의 이창호이지만 지금까지 불계패한 경우도 적지않았다.
그는 "변화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을때 불계패를 자인한다.
반면상으로 1~2집 불리하고,덤까지 쳐서 7~8집 뒤졌을때 불계패를
시인한다"고 했다.
기사들은 보통 불계패를 시인할때 독특한 제스처를 쓰곤 하는데
이창호는 돌을 놓으며 "졌습니다"하고 고개를 숙인다고.
한국남자 나이 20세면 병역의무를 생각해야 할 때. 지난해 논란끝에
공익근무요원 복무가 확정됐지만 구체적 결정이 나온 것은 23일이다.
바둑기사로는 첫 대상자가 된 그는 3월27일부터 98년3월26일까지
3년동안 한국기원 소속기사로서 바둑에만 전념해야 한다.
"지난해 신경을 꽤 썼으나 병역문제로 내 바둑이 달라진 것은 없다.
만약 군에 가게 됐으면 복무기간 힘들었으리라는 생각은 했으나 입대
전까지는 열심히 둘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바둑과 병역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느낌이다"
좀 의외의 답변이었다.
기자가 이해를 못했는지, 아니면 병역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그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아리송한 부분이다.
여하튼 그는 지난해말 진로배 세계최강전(일본)에서 중국 일본의
대표기사를 상대로 4연승을 거두어 오랜만에 국제대회에서 체면을
세우기도 했다.
이창호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체력도 있어 그의 단명을 예상하는
기사는 단 한명도 없지만 요즈음 신예기사들이 쑥쑥 자라고 있는
사실도 부인할수 없다.
그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른바 "신4인방"으로 일컬어지는 윤성현오단 윤현석삼단 최명훈사단
양건삼단외에 김영삼삼단 김성룡삼단 목진석초단등이 정상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신예기사들의 활약상이 예전보다 많이 돋보인다. 10명정도를 꼽을수
있는데,그중 1~2명이 뚜렷하게 앞서있는 상황이라기보다는 그들 모두가
만만치않은 다크호스라고 보고 싶다"
국제기전에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을 듣는 그는 일본 중국기사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주문에 망설였으나 "중국의 윙평 마효춘구단과의
대국때는 다른 기사들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아마 그들이 강해서 그런것같다.
일본은 정상급기사들이 10여명이나 되고 그들과 다 대국하지 못해
평가하기 곤란하다.
동양증권배에서 조치훈구단에게 3연승을 거두었으나 그때는 조구단이
평소 기풍(실리 바둑)과는 달리 나와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이상하다"
말수가 적고 좀처럼 표정이 없는 이창호는 한국바둑의 위상과 미래에
대해서는 비교적 오랫동안 얘기했다.
한국바둑이 현재 각종 세계대회를 제패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 상태를
유지하려면 저변이 두터워져야 하며 정상급 기사들도 더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는 어른스런 말도 덧붙였다.
일본은 기사층이 두텁기 때문에 언제라도 우리를 그는 일본바둑은
역사가 깊은만큼 포석.이론이 뛰어나고 끝내기등에서도 정석위주로
두는 것이 특징이라고 평했다.
또 원래 전투위주였던 중국바둑도 최근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후반에
끝내기를 착실히 하는등 기교를 중시하는 쪽으로 기풍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한국이 싸움.전투바둑을 즐긴다고 했다.
아마추어들이 선호하고 있는 다케미야 마사키의 우주류 바둑은 보기에는
좋으나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고 지적한다.
"어려운 바둑을 자기 스타일에 맞게 개조한 것이 가히 감탄할만하다.
우리 기사들은 우주(중앙)쪽은 워낙 넓어 집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창호도 요즘 포석과정에서 정석에도 없는 신수를 구사하곤 한다.
"새로운 정석" "이창호류 바둑"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주인공답게
창조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는 까닭일까.
프로기사 이창호이지만 지도다면기등을 통해 6~7점을 접어주고
아주 가끔 아마추어와 대국을 한다.
전 한국기원이사장인 장재식 의원(민주.아마칠단)과 선에 덤을 주고
두는데 10집정도 이기기도 했다.
"아마추어라도 아주 장고는 아니더라도 급수에 맞는 수읽기는 해야
바둑이 는다. 아마추어들은 대국중 머리보다는 손이 먼저 나가는 경우가
많아 실수를 하고 덜컥수를 둔다. 적어도 복기가 가능할 정도의 신중함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잘잘못을 따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전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대국이 없는 날에도 한국기원이나 충암연구실에 나가 바둑공부를 한다는
그이지만 "다시 태어나도 바둑을 하겠느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젓는다.
"한때는 그렇게도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바둑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범부의 길을 걷고 싶어서이다. 바둑은 끝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다시 태어나서 바둑을 한다해도 종착역이 없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다른 삶을 경험하고 싶다"
그는 건방진 것 같지만 바둑속에서 인생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고 한다.
초반 중반을 거치면서 종반으로 내닫는 바둑을 셈하면서 인생경험을
간접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별명도 여럿 가지고 있다.
천재기사 신산자 돌부처 외계인,80세 노인,전대고수의 환생,기다림의
달인,끝내기의 귀재,바둑5000년사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 등등.
어떤 것이 가장 자신을 잘 표현한 것인가 골라보라니 "기다림의
달인"쪽을 택하겠단다.
기다림 인내 신중함 두터움 등은 바로 그의 바둑의 특징이 아닌가.
기다림에 익숙해 있어서인가.
고향갈때나 서울에서 움직일때도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지난해 언젠가는 지하철에 막 타는 순간 누군가 "이창호다"라고
큰소리치는 바람에 쑥스러워 혼났다고.
흔한 말로 스타인데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쑥스러움을 타는 것을
성격탓으로 돌리는 그는 마찬가지 이유로 아직까지 이렇다할 여자친구
한사람 없다.
도무지 말을 건넬 용기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자친구로 인해 바둑이 영향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며 기회가 있으면
사귀어 좀 즐겁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양사람들에게도 바둑을 널리 보급하려면 제한시간을 3시간
정도로 단축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했다.
바둑을 제대로 두려면 3시간이 짧지만 세계화의 첨병으로서 바둑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할것이라고 했다.
< 정리=김경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