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2만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집니다.

원가절감이 부품에서 출발되는 이유입니다"(기아자동차 상품기획담당
박정림이사) 정세영회장이 주재하는 현대 울산공장에서의 월례경영분석회의
,기아 전임원이 매주 금요일 갖는 원가분석회의는 언제나 부품의 원가절감
이야기 뿐이다.

그러나 요즘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과거 원가절감이 단품에 국한되었다면 지금은 부품설계와 부품조립을 통한
"시스템적 원가절감" 논의가 깊숙히 진행되고 있다.

자동차업계가 개발및 생산체계에 일대 혁신기를 맞고 있는 현장이다.

모듈(Module)생산과 게스트 엔지니어링(Guest Engineering).국내자동차업계
원가절감의 마지막 승부처이다.

기아자동차에 부품을 조달하는 협력업체수는 줄잡아 3백여곳.

물론 직접 거래관계를 갖고 있는 1차부품업체수이다.

이들이 납품하는 부품수가 약1만5천종에 달한다.

이부품과 기아 공장에서 만들어낸 부품 2만개가 있어야 1대의 차가
완성된다.

게다가 2만개부품이 모두 품질을 만족해야 한다.

관리해야할 협력업체수가 너무 많다.

또 몇몇 중견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영세업체이다.

품질을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완성차라인의 공정수가 너무 많아 생산성제고도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원가절감은 더더욱 기대하기 힘든 상태이다.

기아는 올해 차기 세피아 개발에 나서면서 이같은 체제에 메스를 가하기로
했다.

부품을 단품으로 받아들여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덩어리"째로
납품받기로 한 것이다.

예컨대 현재 세피아는 자동차 프론트엔드(앞부분)을 만들기 위해 범퍼
라디에이터 팬 에어컨파이프 보닛록 와이어장치등을 각각 다른 협력업체에서
받아 기아가 조립해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각부품을 한개 협력업체로 납품토록해 미리 조립키로 했다.

기아는 단지 이 부품덩어리를 통째로 붙이기만 하면된다.

이 부품덩어리가 모듈이다.

기아는 우선 올해 자동차 앞부분인 프론트엔드와 도어부분을 모듈화한다는
생각이다.

모듈화의 장점은 첫째 관리해야하는 부품업체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프론트엔드만 모듈화되도 1차협력업체수는 6개에서 1개로 줄어든다.

각업체가 JIT(Just In Time)제를 적극 도입하고 있어 6개 부품을 납품할
때마다 6대의 차량이 공장에 들어와야했다.

이제는 1대 차량으로 프론트엔드 납품이 끝나게 된다.

이른바 "물류의 단순화"이다.

둘째 본격적인 자동화가 가능하다.

덩어리 부품을 조립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조립공수가 줄어든다.

생산성제고도 자연히 따라붙는다.

모듈납품업체에서 품질검사를 마칠수 있어 검품에 따르는 비용과 인력도
줄일수 있다.

세째 협력업체 대형화가 가능하다.

완성차업체의 부가가치를 넘겨받는데 따른 것이다.

게다가 조립의 노하우로 설계능력도 쌓아나갈수 있다.

기아뿐이 아니다.

현대자동차도 전차종의 크래시패드를 1차협력업체에서 조립해온다.

5개 업체에서 납품하던 것이 1개업체로 줄었다.

엑센트의 글로브박스로 3개업체에서 부품을 받아 조립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1개업체가 조립해 크래시패드조립 협력업체로 보낸다.

2차협력업체의 모듈화도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전차종의 범퍼내 에너지업소버도 2개업체 부품을 1곳에서 조립해온다.

대우자동차 역시 인스트루먼트패널을 모듈화했다.

10개업체에서 들어오던 부품이 덕부진흥 1개업체로 줄었다.

모듈화와 더불어 주력하고 있는 것이 게스트 엔지니어링이다.

기아에서는 이를 디자인-인(Design-In)으로 부른다.

손님(협력업체)을 초빙해 함께 설계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국내업계는 완성차업체가 모든 도면을 작성해 협력업체에 나눠줘
왔다.

협력업체는 단순히 생산만 하면 될뿐이었다.

부품업체의 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생산과는 동떨어진 설계가 나오기 마련이다.

다시 설계하고 품질을 안정시키려면 개발기간이 늘어질수 밖에 없다.

이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한 것이 게스트 엔지니어링이다.

현대가 내달 내놓는 신차 아반테가 이같은 설계방식의 첫 성공사례이다.

와이어링류는 유진 경신공업,키세트는 신창전기,도어트림은 한일이화등
상당수의 부품을 협력업체가 함께 설계했다.

기아자동차도 세피아 후속모델을 개발하면서 조향장치 브레이크 서스펜션
등의 부분설계에 23개 납품업체를 참여시키고 있다.

대우자동차도 신차를 개발하면서 램프는 (주)성산,사이드미러는 (주)대성
등과 함께 공동설계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는 조립업체가 사양만 보내면 협력업체가 직접 도면을 작성할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시켜야합니다"(현대자동차 승용상품기획팀 이형근부장)
그렇게 되면 원가절감은 물론 일본의 경우처럼 한차종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40-45개월에서 18-22개월로 단축시킬수 있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품질안정도 기할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아자동차 승용개발담당 김재만이사는 "개발력을 갖춘 부품업체가 거의
없어 모든 것을 교육시켜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동설계과정을 모두 소화해내는 협력업체는 손가락으로 꼽을수 있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모듈생산도 마찬가지이다.

현대는 현재 "덩어리부품 납품제도"를 모듈화라고 부를수 없다고 말한다.

부품의 시스템화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고 자체평가하고 있다.

진정한 모듈화를 이루려면 한개의 모듈이 비슷한 차종에는 공통적으로
활용될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부품공용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모듈화에는 또 자동화를 위한 설비투자와 유휴인력의 활용방안이 반드시
검토돼야한다는 것도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정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