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왕래하던 16세기 포르트갈인은 일본의 닛폰도(일본도)의 예리함과
견고함에 놀랐다고 한다.
2차대전중 일본은 미국보다 명중률이 높은 어뢰를 이미 생산하고 있었으며
세계적으로 성능을 인정받은 제로형 전투기를 생산하던 나라다.
이와같은 놀라운 일본인들의 능력은 일본인과 일본식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자세를 갖게한 요인일 수도 있다.
한국의 금융정책은 일본의 복사판이라는 것은 오래된 지적이다.
"일본이 이렇게 해왔으므로"라는 정당화 논리가 통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는 단순한 논리가 무너지고 있으며
이와같은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진로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들어 한가지 주목할만한 일은 일본 증권업계에 진출했던 외국
증권회사들이 대거 철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새 일본인들은 "금융공동화(금융공동화)"를 걱정하고 있다.
외국 증권회사의 철수이유는 도쿄의 높은 세금과 운영비라는 이유이외에도
대장성이 아직도 세계화 추세에 역행하는 규제위주의 정책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본 대장성의 고압적 권위주의야 말로 도쿄 증권시장이 흥콩 싱가포르에
자리를 내주지 않을수 없는 요인이라는 비판까지 대두되고 있다.
21세기가 가까워지면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서비스산업이 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이 70%,대만의 경우 50%에
달한다는 것은 좋은 예이다.
이런 대세속에서 일본 관료들의 규제위주정책이 많은 영업기회를
잃어버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우리가 일본식 경영을 무분석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좋게 평가하는 것중
하나가 평생고용이다.
이 또한 그 본질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수 있다.
일본은 전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해온 나라이다.
이렇게 경제성장을 해온 일본은 철강산업과 자동차산업의 몰락을
경험하였던 미국과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다시 말하면 기업이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구태여 종업원과
노조의 반발을 살수 있는 해고를 단행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특히 91년 중반의 버블경기때는 기업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인력난이었고
모든 기업들이 인력난을 예상하여 많은 인원을 채용했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따라서 평생고용제도는 기업의 인력을 자사에 유치하는데 필요한 장치에
불과했다.
이는 경영층이 노조와 종업원에게 내놓을수 있는 그럴싸한 명분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제 전후 최장의 불경기를 맞은 일본기업들은 과잉채용의 불필요한
인력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평생고용을 외치던 대기업도 본사 직원(특히 관리직)무조건 4%감원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경영방식의 경제적 배경에 대한 이해없이 평생고용제도 때문에
일본 종업원의 충성심이 높고,이러한 장치가 일본의 성공에 기여했다고
결론을 내릴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의 평생고용제도가 어떻게 정착될수 있었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를 심도있게 분석하고 본질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은 일본을 재음미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설명하는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피상적으로 알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알지 못하니만 못할
때가 많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