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데 이골이 난 사람" "성실한 성격에 쇳소리가 나는 걸 싫어하는 관료"
"윗분의 뜻을 재빨리 알아채 신속처리하는 인물"

홍재형 부총리겸 초대 재정경제원장관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말들이다.

재무부장관시절 금융실명제실시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때부터 그는 김영삼대통령의 "신임"을 뒷심으로 각종 개혁조치를 요리
했다.

2단계금리자유화를 실시했고 금기시됐던 외자도입법 외국환관리법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등의 폐지방침도 내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지난10월 경제기획원장관으로 발탁됐으며 이번에 또
초대 재경원장관을 맡게 된 것이다.

"윗분의 뜻"을 잘 읽는 장점도 있다.

지난92년10월 금융관련 7개단체장을 경질할때 보였던 "신속성"이 그의
이같은 면모를 엿보게 한다.

지난1월 "제2의 장영자사건"때도 소신을 꺾고 위의 뜻에 따라 두명의
은행장을 퇴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홍부총리의 관료생활이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63년 재무부사무관으로 시작해 주영재무관 관세청조사국장 관세국장
해외협력위원회기획단부단장 관세청장등을 거쳤으나 재무부의 "꽃"이라는
이재국에는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홍부총리가 재무부장관취임후 주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재국의
간판을 내린 것도 이같은 그의 경력과 무관치 않다는게 주위의 평이었다.

매사에 신중하고 상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거의 없어 한때 "주사급장관"
이란 달갑지 않은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신임으로 힘이 붙어 금융실명제 비밀보장 완화문제로
이회창전총리와 의견대립을 빚으면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아 고집이 센
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서울대 상대시절 태권도 유단자로 활약했으며 취미는 독서와 등산, 부인
전윤숙(37년생)씨와 1남1녀.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