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길을 걷기 위해 행정고시및 7급 공채시험 응시 준비를 해온
다수의 공무원 지망생들이 최근의 공무원 사회 불안과 관련 중도 포기
하거나 진로를 선회하고 있다.

22일 시내 주요 고시학원및 각 대학 고시반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정부의
중앙부처 공무원 감축 조치로 당분간 공무원 수요가 줄어들 것이 분명한데다
신분 불안현상까지 겹쳐 그간 행시및 7급공채를 준배해온 이른바 "고시파"들
사이에 사법고시로 전환하거나 아예 포기한채 기업체 취업으로 돌아서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총무처가 내년도 행시 선발인원을 올해의 절반 수준 이하로 줄이고
7급 공채는 극소화하거나 시험실시 자체를 생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도 포기하는 고시파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고시 전문가들은 "가뜩이나 지자제 실시를 앞두고 중앙 공무원의 수요가
크게 줄 것으로 예상돼 행시 및 7급 공채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상황"
이라며 이번에 터진 중앙부처 공무원의 대량 감원사태가 이들 고시생들이
포기를 결심하는데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것으로 보고있다.

여기에다 문민정부가 들어선후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는 세도등 각종
공직자 비리가 이들에게 공직이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는 구실을
제공, 중도 포기를 부추기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3백여개의 고시원및 고시학원이 밀집돼 고시생들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관악구 신림9동 고시촌 관계자들은 최근들어 많은 행정고시 지망생들이
사법고시로 전환하거나 포기를 선언하고 취업을 위해 떠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성고시원의 김상기 원장(42)은 "요즘은 행시 준비생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며 "남아있던 5~6명의 행시생들마저 포기하고 떠났다"고 말했다.

유영고시연구원의 김민정총무는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며
"비교적 나이가 적은 고시생들은 기업체 취업을 서두르며 퇴원했고 오래
동안 준비해온 나이 많은 고시파들은 사법고시로 전환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동방고시학원의 경우는 행시및 7급공채 관련 과목 수강생이 대폭 줄어
과목별 강의 시간을 조정해야 할 형편이다.

고시전문학원인 태학관의 김경헌 원장(42)은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50대 1이상의 경쟁율을 보여온 행시 및 7급공채 응시생이 크게 줄 것이
분명하다"며 모든 고시학원이 사법고시 위주로 운영될까 걱정했다.

김원장은 "지금까지 고시촌에 몰려온 고시파는 우리 사회에 인재들
이었다"며 이들 우수 인력들이 공직을 기피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했다.

행시및 7급공채를 가장 인기있는 취업 직종으로 여기고 수험준비를
해온 각 대학 고시반도 최근 술렁이기는 마찬가지다.

행정고시를 목표로 2년이상 공부하고 있은 서울대 양재혁군(경영4)은
"고시 3과중 행시의 위상이 크게 떨어졌다"며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어 진로를 바꿀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고시반의 한 관계자는 "행시에 대비해온 많은 학생들이 회의와
좌절을 맛보고 있은 것 같다"며 "취업상담을 요구해 오는 등 요즘 고시반의
분위기는 썰렁하다"고 말했다.

한 고시 전문가는 수년간 고시에 매달려온 세칭 늙은 고시파들은 기업체
입사 가능한 연령제한도 넘긴 상태라 연고지를 찾아 내년에 처음 시행되는
지방행시에 대거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상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