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노란색의 스쿨버스가 내리막도로에서 브레이크파열을 일으켜 멈출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버스가 과일가게를 들이받아 길가에 과일들이 나뒹굴고 소화전을 쓰러뜨려
물줄기가 하늘로 치솟는등 손에 땀을 쥐게하는 급박한 장면이 이어진다.

이를 발견한 경찰오토바이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뒤쫓아가지만
속수무책이다.

그러자 빨간색 소형 승용차가 나타나 스쿨버스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지나가던 전차를 간발의 차로 피하면서 스쿨버스를 앞질러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속도를 급히 줄인다.

스쿨버스가 몇차례 승용차의 뒷부분을 받으면서 마침내 정지한다.

스릴만점의위기를 넘겨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 순간 "강자에겐 힘이 있다.
뉴세피아"란 멘트가 흘러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빨간색 승용차는 말할것도 없이 뉴세피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방영될 기아자동차의 뉴세피아 CF스토리이다.

이광고에 나오는 내리막길은 얼핏보면 하나의 도로같지만 사실은
파인스트리트등 5개의 거리에서 촬영해 편집한 것.

스토리의 내용전개가 긴박한 것처럼 이광고를 기획 제작한 MBC애드컴의
현지촬영도 숨가쁘게 진행됐다.

주정부로부터 도로통제의 댓가로 1시간당 45달러의 경비를 지불했고
시민에게 불편을 주지 않아야 된다는 단서와 함께 토 일요일 아침7시에서
10시사이로 촬영시간이 제한됐기 때문.

다행히 운전솜씨가 능숙한 스쿨버스기사와 경찰을 기용해 진행이 수월했던
것.

스쿨버스의 운전기사는 영화 다이하드에서 부루스윌리스의 대역으로 나오는
스턴트맨이었고 오토바이경찰은 비번이었던 현지경찰을 기용.

경찰관은 아르바이트로 출연한 임시 모델이었지만 전문모델이상의 표정
관리와 연기력이 탁월했다고.

쵤영과정에서 4분마다 1대씩 지나가는 전차는 통제할수가 없어 전차가
지나가는 틈틈이 한 커트씩 찍느라고 불편이 따랐고 뉴세피아의 앞부분이
전차에 들이받치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현지 촬영을 감독했던 MBC애드컴의 임찬빈부국장은 "차량파손에 따른
추가경비지출이나 기한내 촬영의 어려움도 문제였지만 인명피해가 발생
했을까봐 눈앞이 아찔했다"며 당시 상황을 술회.

광고화면중에 나오는 길가의 차량등도 1일 1대당 1백달러를 지불한 어엿한
엑스트라 광고모델.

스쿨버스가 동원된 것은 앞부분이 낮아야 뉴세피아를 들이받는데 적합한
것을 고려한 것인데 오히려 어린 학생들이 타고 있다는 상황설정 때문에
더욱 불안감과 긴장감을 고취시키는데 한몫한 셈.

그런데 광고화면을 자세히 보노라면 화면처음엔 학생들이 차속에서 이리
저리 쏠리며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있으나 끝부분에서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옥의 티"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수없는 조치였다는 것.

이렇게 제작된 광고는 방송위원회 광고심의위원들의 불가판정으로 하마터면
방송이 수포로 돌아갈뻔 했다.

심의에 앞서 서울경찰청에 도로교통법상의 문제점등을 자문한 결과 "큰
문제점이 없다"는 결론과 함께 "상당히 흥미로운 광고일뿐만 아니라 경찰의
활약상을 담은 마음에 드는 광고"라는 찬사까지 받았지만 심의위원들이 1차
심의에서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불가판정"을 내렸던 것.

이에대해 MBC애드컴이 실제 상황을 다시 재연해 보이겠다며 강력한 이의를
제기하자 "실제 가능한 상황은 아니므로 모방하지 마십시오"라는 자막처리
를 한다는 조건으로 "방송가" 판정이 내려져 빛을 보게 됐다.

<김대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