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의 대중 로맨스가 끝나가고 있다.

서방 기업들과 중국간의 밀월 관계가 계속되는 불협화음과 오해로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한때의 맹목적인 열정은 사라지고 과거에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법정
투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지가 보도한데 따르면 몇몇 일본 은행들과 미월가
증권회사들은 중국측의 계속되는 약속 불이행으로 계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대중국 최대 투자자 가운데 하나인 홍콩기업들도 파키스탄이나 인도로
투자선을 돌리는등 중국의 독선에 고개를 젓고 있다.

햄버거로 유명한 미맥도널드사는 도시개발계획상 어쩔수 없다는 이유로
북경시 당국으로부터 한창 잘 나가던 체인점을 비워 달라는 명령을 받았다.

대중 투자의성공 사례로 여겨지던 모델 기업이 리스크 의 상징이 돼버린
것이다.

물론 이는 외국기업들의 중국시장 포기 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는 기업들의 속성상 12억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시장에서 발을 뺀다는 것은 생각할수 없는 일이다.

최근의 이상기류는 중국정부당국이나 외국기업들 모두가 초기의 열정을
냉철하게 재고하고 있는데서 비롯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외국인들과 중국인들간의 상충
되는 견해가 무엇인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의 한 관계자는 "중국 거래업자들은 이익이 있으면
손해도 있을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LME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손실을 보고도 수천만
달러의 계약불이행이라는 전과를 갖고 있다.

중국 정부 당국도 나름대로 서방기업들에 대해 할말이 많다.

수천명의 중국인들을 사취하고 부도를 낸 외국계 상품및 금융선물회사들의
뒤처리로 여념이 없는 광동성 당국은 "외국인들이 중국에서 불법적으로
떼돈을 거머쥐려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외국인들은 올들어 10월까지 중국에 하루평균 8천3백만달러를 쏟아 부었다.

이는 지난해보다 44% 증가한 것이다.

이로써 올해까지 대중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총2백52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외자유치에 있어 중국의 라이벌인 베트남의 국내총생산(GDP)을 초과
하는 것이다.

서방 경제전문가들은 그러나 대중 투자의 성공여부는 오직 중국 정부당국
에 달려 있다고 꼬집는다.

미포드 자동차의 웨인 부커 부사장은 "포드는 중국에 10억달러를 투자할
준비가 돼있다. 그러나 중국이 과연 언제 어떻게 이를 수락할지 종잡을수
없다"고 말한다.

중국은 독불장군식으로 독자적 규정을 마련하는 버거운 상대라는 지적이다.

중국은 또 GE 경영진들이 지난달 뼈저리게 경험했듯이 언제라도 규정을
바꿀수 있는 국가다.

GE는 발전기 합작투자회사설립 문제를 놓고 1년 넘게 줄다리기를 해왔으나
중국 정부 당국으로부터 외국인들은 전력산업의 지배 주주가 될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가장 당혹스런 것 가운데 하나는 서방의 상식으로 볼때 분명히 금전상의
의무가 있는데도 중국 국영기업들이 막무가내로 이를 회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다.

일본 독일 이탈리아 은행들이 빌려준 6억달러의 차관을 상환하지 않고
무작정 버티기만 하는 국영기업들이 있는가 하면 중국국제신탁투자공사
(CITIC) 상해지사는 LME에 지고 있는 4천만달러의 채무를아예 변제할 생각
조차 않고 있다.

미국의 레만 브러더스사는 1억달러의 거래손실을 입은 2개의 중국국영기업
이 결코 책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 이들을 뉴욕연방 법원에 제소했다.

이들 국영기업들은 1억달러의 손실은 일부 종업원들의 자의적 거래로
인한 것이므로 절대 책임을 질수 없다고 우기고 있다.

레만 브러더스사도 강조하고 있듯이 그렇다고 서방기업들의 대중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중국의 방식과 서방의 견해가 서로 달라 초기의 맹목적 로맨스가
식어지면서 곳곳에서 충돌을 빚고 있다는 분석이다.

< 김병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