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도 할말 있다" ]]]

강만수 < 재무부 세제실장 >

얼마전 성수대교붕괴사건으로 온 세상이 시끄러울 때, "겉으로는 국익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사리사욕의 추구에 골몰하는 관료들!

정교하게 짜여진 규제의 그물위에 이권구조를 구축해 놓고 개혁과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조류를 복지부동의 자세로 항거하는 관료들의
생리를 파해친 책"이라고 소개된 일본의 저널리스트 옥산태랑이 쓴
"관료망국논"을 읽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오랜기간 일본의 행정개혁직업에 참여하고 해외특파원으로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쓴 이 책은 관료들의 잘못된 행태들을 지나치지만 적나라하게
공격하고 있다.

"대장성이란 금융제국을 타도하라" "어느 모로 보나 백해무익한 통산성"
"노동성을 폐기처분하라" "문부성은 차라리 없애버리는 편이 낫다"등의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본관료들이 망국지대죄를 짓고 있다고 칼로
찌르듯 질타하고 있다.

나는 일본관료들의 행태속에서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같이
있는 동료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리고는 나의 지난 20여년간의 관료생활을 되돌아 보았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경제개발이 본궤도에 오른 1970년 늦가을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부터 나의 관료생활은 시작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거쳐 청운의 뜻을 품고 출발한 우리들에게
주어진 한달 봉급이 2만여원이었고 하숙비는 1만8천원정도였으니 관료생활의
빛과 그림자는 처음부터 운명적인 것이었다.

구정물 먹고 마시며 허우적 거리던 어느날 "서정쇄신"이라는 이름의
철퇴가 우리를 내리쳤고, 얼마뒤에는 "10월유신"의 강요된 수호자가 되어
우리 젊은 관료들은 사고와 행동에서 이중성의 질곡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길이라 달리 갈곳도 없고, 남편노릇 애비노릇 못할까봐
괴로움과 좌절을 안으로 삭이며 묵묵히 지내왔다.

그러나 1천달러소득과 1백억달러수출의 향도역할을 한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로부터의 찬사와 찌든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새마을운동"의 감격은
빛과 그림자를 오가는 우리들에게 싱그러운 레몬향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두운 그림자가 물러가는가 싶었던 어느날 갑자기 우리들은
오물과 같이 "정화"의 대상이 돼버렸다.

엄청난 수모속에서도 지은 죄가 있어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어려움과
고뇌속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헌신해 왔노라"고
되뇌며 나약한 군상들이 되어 숨죽이며 살아왔다.

시대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스려져온 슬픈 유산을 타고난 우리 관료들은
문민정부들어서도 "복지부동"하는 "개혁의 걸림돌"로 질타되고 있는 중에
"세금도둑사건"이 터지고 성수대교붕괴사고가 일어나니 어찌 이리 잔인한
운명인가.

지금 모두가 우리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고 우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지만
우리를 구해줄 "선한 사마리아인"은 없다.

그러나 오늘을 포기할수도 없고 우리일을 대신할 사람도 없다.

경제개발을 위하여 우리 관료들이 보여온 60년대의 도전하는 용기,
70년대의 불타던 정열, 80년대의 줄기찬 투지를 다시한번 살려 세계속의
통일조국을 위해 다시한번 일어나야 한다.

우리를 개혁의 걸림돌로만 돌리지 말고 잘못을 채찍질하되 잘한 것은
상주고 고충은 들어주고 상처는 감싸주는 따뜻함이 필요할때다.

그리하여 우리 관료들이 다시한번 흥국지대공을 세울수 있도록.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