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발표한 "남북경협 1단계 활성화조치"를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선 북한의 속셈은 무엇인가.

우리측 경협방안 자체를 거부한 것인가, 아니면 의례적인 대남비방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가.

북한관련 전문가들은 북한 중앙통신과 조평통(통일원격)이 10일과 11일
잇달아 발표한 "1단계조치" 비난성명과 관련, 경협자체를 거부했다기 보다는
대내외 체면치레에 비중을 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분석의 우선적인 근거는 두 기관의 성명서 내용중에 경협활성화조치
자체를 거부한다는 언급은 한마디도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북측이 "남측 조치는 과거와 비교해 새로운 것이 없으며
남북한간에는 이미 경제분야협력을 위한 합의서와 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가
있다"고 언급한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테면 요란스레 발표된 한국정부의 대북경협 활성화조치가 마치 북에
대한 "시혜"로 인식될 것에 대해 나름의 "체면"을 갖추겠다는 대내외 선전
선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남북경협을 거부하기는 커녕 핵문제가 확대되기 이전인 92년 남북고위급
회담을 통해 체결된 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 경협을 본격 활성화하자는
숨은 뜻도 읽을 수 있다(김남식평화연구원 연구위원)는 분석도 나온다.

첫째로 북한측은 최근 한국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비당국간 차원"의
경협요청을 강화해 왔다.

지난달 북경에서 대남 경협창구기관인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를 통해 현대
삼성 선경 동양등 국내 대기업그룹 사장및 임원급 고위관계자들과 접촉,
투자유치문제를 논의한게 그 단적인 예다.

얼마전에는 현대와 삼성등 일부 그룹의 총수급들에게 방북초청장을 보내
오기도 했다.

또 북한정권이 개방의 전초기지로 내세우고 있는 나진.선봉지구에 한국의
중소기업들을 대거 유치하기 위해 고민발명의의 "투자담보서"를 남발하고
있다.

이런 북한정권인 만큼 한국기업인들의 대북방문이나 투자에 대해 제동을
걸 이유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한국정부의 1단계조치 자체가 북한정부와의 당국간 논의가 필요치
않은 초보적 제한조치만을 해제했다는 점이다.

기업인 방북이나 대북사무소설치, 소규모 경협시범사업투자등은 우리
기업들의 "자기책임및 판단아래" 북측과 합의가 이뤄질 경우 규제하지
않겠다는게 정부의 활성화조치 내용이었다.

따라서 이번 북한기관들의 비난성명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대북경협을
거스를 요인은 없다는 분석이다.

세째로 북한측에서 먼저 "기본합의서" "교류협력위"의 재가동문제를
우회적으로나마 언급했다는 점이 주목거리다.

지난 92년 9월17일자로 남북간에 합의.발효된 "남북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는 물자교류 합작투자등을 위한 제반분야의 당국간
논의원칙과 일정이 제시돼 있다.

한국정부는 그러나 경수로사업을 포함, 핵문제가 완전 타결됐다고 판단되는
시점까지는 당국간 경협확대논의를 위한 북측과의 회의를 먼저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그런데 북측이 이번 성명에서 이 문제를 언급, 도리어 남북경협에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이 한국정부의 조치를 정면 공박하고 나섬으로써 당분간은
당국간 차원은 유보하고 한국의 기업인들을 선별적으로 집중 공략하는
북한판 정경분리노선을 밟을 소지가 클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건 북한의 잇단 비난성명에도 불구, 남북경협은 핵문제해결
이전에 비해서는 진전될게 분명하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