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핵협상 타결이후 물밑에서 추진돼온 기업들의 대북진출 움직임에
물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현대 삼성등 일부 그룹에 북한 고민발명의의 초청장이 처음 날아들었다는
얘기가 그 "물소리"의 하나다.

그동안 중국과 일본 홍콩등을 오가며 이뤄졌던 기업들의 쓰리쿠션식 대북
진출 논의가 무대를 본바닥으로 옮겨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들 그룹이 아니더라도 재계의 대북진출 움직임은 일찍부터 감지돼왔다.

지난 8월 김일성사망직후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이 비밀리에 평양을 다녀왔다
는 일부 전문이 재계일각에 나돌기도 했었다.

사실 국내에 대기업총수들의 북한방문은 크게 새로울게 없는 뉴스다.

정주영현대그룹 명예회장이 89년 한국 대기업총수로는 처음 북한을 다녀온
이후 92년1월엔 김대우회장이 수행임원들을 이끌고 평양일대를 공식 방문
하기도 했었다.

이해 5월엔 상공부등 정부관료들까지 포함된 민관합동조사단이 남포공업
단지일대를 둘러보고 온 적도 있다.

직후에는 김달현당시 북한정무원 부총리 일행이 경제기획원의 초청을
받아 서울과 수원(삼성) 청주(럭키금성) 울산(현대) 수원(삼성) 인천(대우)
부산(화승등 신발업체)등에 나들이를 했을 정도다.

이 시기를 전후해 국내기업들은 북한진출의 손익에 대해 나름의 주판알을
튕겨뒀었다.

그래서 나온게 대우그룹이 주도하되 화승(신발) 신성통상(의류)등 중소
기업들이 공동참여한다는 "남포 경공업단지 합작투자 프로젝트"였다.

현대그룹은 정명예회장의 89년 방북당시 원칙 합의된 금강산 관광단지개발
과 원산철도차량공장등의 투자계획이 아직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삼성그룹은 청진이나 나진.선봉지역내에 전자 섬유등의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검토해 왔다.

최근 북한 고민발이 이들 그룹에 초청장을 보내온 것은 그러니까 이들
프로젝트에 대해 북한정권도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간접 시사한
것으로 볼수 있다.

고민발은 북한이 미수교국들과의 경협프로젝트를 전담토록 하기 위해 지난
4월 설립한 기관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무역협회나 무역진흥공사(KOTRA)처럼 관련업계를 총괄하는
나름의 대표성을 갖는 기구다.

북한정부에 독립적인 기구로 돼있지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성록은 우리의
상공부격인 대외무역부 부부장(차관급)출신이다.

북한정권이 나름의 의욕과 계산을 갖고 이 기구를 운영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들의 대북진출에 대한 1차적인 열쇠는 한국정부가 쥐고
있다고 할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기업인들의 북한방문이 아직 금지돼 있는 상태여서다.

정부는 최근 북.미핵협상 타결에 따른 1단계조치로 기업인의 방북허용등
부분 대북경협제한조치 해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다.

그래서 김영삼대통령은 7일 여의도 63빌딩에서 경제인들과 가진 만찬에서
"남북관계가 세계사의 흐름에 맞춰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들어가야 한다"며
"이러한 여건조성을 위해 우리기업들이 참여하는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활성화할 단계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같은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경제계와 국민들의 의견을
다각도로 수렴해 온데 따라 남북경협을 활성화하는 구체적 조치를 시급히
검토.마련해 나가겠다는 뜻"이라는 주석을 덧붙이고 있다.

북한의 한국기업인 초청움직임에 우리정부도 화답의 제스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다.

그러나 기업인 방북은 본격적인 남북경협을 위해 풀어가야 하는 첫 단추에
불과할 뿐이다.

남북경협에 완연한 물꼬가 터지기 위해선 기업과 정부가 2인3각으로 산적한
제도적 실제적 난제들을 차근차근 헤쳐가야 할게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8일자).